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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데모’의 세상이었다. 지금은 이 세상 분이 아닌 마광수 교수는 대학생 시절을 회고하기를 “나는 대학 1학년은 데모를 옆에서 지켜보거나 참가하는 것으로 끝이 난 것 같다. 그 긴 휴교의 가을방학 기간 동안 나는 유용한 시간들을 많이 가졌고, 학교 뒤 숲을 거닐며 사색의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기이한 청춘을 보냈음직한데, 소싯적 프로이트와 융, 쇼펜하우어의 ‘비극적 인생’을 읽는 등 사색과 독서를 즐겼더란다.
책 읽는 시간보다는 손전화기와 소셜미디어 방에 올린 제 얼굴을 더 많이 쳐다보는 세상이 되었다. ‘칼 마르크스’를 곱씹던 세대와 달리 요새 청춘들은 ‘칼 마구대스’ 외모 성형과 ‘돈타령’ 노래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영화제가 열린다길래 광주엘 나갔다가 영화관 옆 쪼꼬만 책방에 들렀다. “책방에선 책을 사고 절에선 절을 하는 뱁이재~” 하면서 나는 시집을 샀고, 친구는 미술책을 골랐다. 요전날엔 LP 음반 한 장 사려고 동대문 어딜 갔다가 헌책방엘 100만년 만에 살짝 기웃. 앞서 말한 마광수의 에세이를 손에 넣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책을 남기더구먼.
“런던에 안개가 자욱한 날. 난 기운도 빠지고 기분도 울적했어. 같은 알람에 아침을 맞지. 대영박물관은 매력을 잃었어. (…) 안개는 언제까지 끼려나. 그런데 뜻밖에 난 당신을 그곳에서 만났다네.” 엘라 아줌마와 루이 아저씨가 부른 재즈곡 ‘안개 낀 날(A Foggy Day)’을 바늘이 닳도록 듣는 중이다. 책을 들고, 단감을 깎아 먹으면서 간만 즐겨보는 가을밤. 북조선 ‘북’ 말고 책 ‘북’을 가까이하는 요즘이다만, 북쪽 땅 북도 어르고 살펴야 태평성대 전쟁이 없지.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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