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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 (수)

신약개발 '죽음의 계곡' 넘겨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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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규 유안타인베스트먼트 이사. 사진=유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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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유수인 기자]

"바이오텍의 운명은 개발 중인 신약이 언제, 어느 시장에 들어가느냐에 결정된다. 돈이 많으면 문제가 없지만 자금이라는 건 한계가 존재한다. 바이오텍은 낮은 성공가능성과 높은 임상개발 비용 등으로 매우 긴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우정규 유안타인베이스트먼트 이사는 6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진행된 '2024 프레스 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하며 국내 바이오기업들의 생존전략을 제시했다.

'데스벨리'는 벤처기업이 기술개발부터 사업화 단계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어려움을 뜻한다. 모든 기업은 데스벨리를 경험하지만 신약개발 벤처의 데스벨리 구간은 유독 길다. 신약개발은 타겟발굴, 후보물질 발굴, 전임상, 임상, 상용화 등의 단계를 걸치는데 약 10년 의 시간과 1조원 이상의 자금이 소요된다.

유 이사는 "바이오텍은 신약개발 초기 '희망 투자가치'와 '실질 가치'가 역전하는 시점부터 데스밸리가 펼쳐진다"며 "바이오텍은 이전에 없던 기전의 혁신신약 물질을 발굴했을 때 높은 가치를 받으며 창업하게 된다. 아직 가치가 증명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얻을 가치가 많다는 점 때문에 시장에서 환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임상 진입에 앞서 시행해야 하는 비임상 독성시험 단계에서 처음 벽에 부딪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단계에서 기업들은 좋은 데이터와 임상 시료를 만들어내기 위해 어떤 임상시험위탁기관(CRO)에게 맡길지 고민한다. 결국 바이오기업이 가지고 있는 예산에 따라 약의 운명이 앞 단계에서부터 천천히 결정되는 것"이라고 했다.

기업들은 신약개발에서 가장 많은 비용이 드는 임상시험 단계에서 또 한 번의 데스밸리를 겪는다. 이 단계에서 약 1000억~50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하게 되는데 벤처기업들이 이 정도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기란 쉽지 않다. 최근 국내 바이오 분야 투자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기업들의 자금 사정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벤처캐피탈(VC)의 바이오/의료 분야 투자 금액은 2021년 1조6770억원에서 2022년 1조1058억원, 지난해 8844억원으로 줄었다. 바이오 기업의 기업공개(IPO)는 2020년 17개에서 지난해 9개로 감소했다.

미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는 금리인하 등의 영향으로 바이오 분야에 대한 투자심리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의 자금경색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유 이사는 "바이오 분야에 대한 투자 환경이 개선되고 있긴 하다. VC 신규 투자 산업 순위에서 바이오/의료 분야가 3위 밖으로 넘어가는 일은 향후 10년간 없을 것이고, 정부도 미래 먹거리로 바이오산업을 밀고 있다"면서도 "(투자금액이) 호황을 누렸던 2020~2022년 때의 숫자까진 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당시 신규 창업한 바이오 관련 중소벤처수가 가장 많았던 게 546개다. 그 중 10%만 성공해도 50개 기업인데, 한 기업당 500억원 정도의 VC 투자를 받아야 하다고 치면 2조5000억원이 된다. 이 정도의 투자 금액은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며 "냉정하게 얘기해서 없어져야 하는 회사가 있어야 했고, 작년부터 청산하는 회사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 이사는 바이오 기업들이 VC 투자 유치에 성공하기 위해선 ▲기술력 ▲주요인력의 역량 ▲생동력 ▲생존력 등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그는 "VC 심사원 중 한명으로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기술력은 기본이고 주요인력의 역량도 주의 깊게 볼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기술력만 있으면 성장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대표이사가 월급을 얼마나 받는지까지 보는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방만하게 운영된 회사가 많았다는 얘기"라며 "자금조달 이후로도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주주 간, 직원 간 소통이 잘 된다면 후속 투자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또 그는 "내 기술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메타인지' 역량도 필요하다. 시장의 입장에서 회사가 보유한 기술의 가치를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며 "메타인지가 약한 쪽에서 한 쪽에서의 주장을 하기 시작하면 발전 과정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유 이사는 마일스톤 성과와 플랜B 여부도 투자 결정에 영향을 준다고 했다.

그는 "초기에는 '어느 시점에 어떤 마일스톤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기업에 투자를 결정한다. 이후 후속 투자를 하고 싶은 기업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소통을 잘하고 기존에 얘기했던 마일스톤 달성을 이뤄낸 곳들"이라며 "일부 기업들은 너무 공격적인 타임라인으로 (마일스톤 달성 계획을) 잡을 때가 있는데, 세상일은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플랜B가 있다, 없다를 얘기해주는 기업은 분명히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이사는 벤처들이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데스벨리를 건너기 위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선 돈이 많이 모여야 한다. 그러려면 자성의 목소리도 필요하다. 벤처 회사가 먼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일들이 선행돼야 한다는 얘기"라며 "민간과 정부, 금융권에서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는 많이 나온다. 그럼에도 지켜지지 않는 것은 (기업이 봐도) 잘 안되는 상황에서 함부로 자금(세금 등)을 쓸 수 없다는 고민이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유 이사는 좌절의 경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민간기관, 금융, 투자, 규제 등에서 좌절의 경험을 여러 번 겪으면서 '바이오 섹터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고 레퍼런스를 쌓아야 한다"며 "각각의 요소에서 환경을 분석하고 생존, 출구 전략을 세워놓은 기업이라면 많은 기관이 도와줄 것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유수인 기자 su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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