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5 (목)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네덜란드 기자가 본 일제의 전쟁 성폭력…신간 '위안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피해자 경험 무시하는 것 유감…트라우마의 심각성 보여줘"

연합뉴스

중국 윈난(雲南)의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미국국립문서관 자료, 위안부 문제와 아시아여성기금 디지털 기념관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1937년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수도였던 중국 난징(南京)을 침공한 일본군은 마구잡이로 강간과 학살을 벌인다. 서구에서 분노가 들끓자 일본군은 강간 방지를 목적으로 군 위안소를 설치하기로 결정한다.

피해자를 염려한 게 아니라 군인들이 성병에 걸려 전투력을 상실하는 것을 방지하고 점령지의 반일 감정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강간을 막겠다며 변형된 형태의 강간 혹은 강제 성매매를 제도화한 셈이다. 일본의 패전 80년이 다가오는 오늘날까지 한일 간 인식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일본군 위안부 동원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특파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네덜란드 저널리스트 브리지트 아르스는 최근 번역 출간된 신간 '위안부'(탐구당)에서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을 이같이 소개하고 피해자들이 겪었던 고통을 당사자들의 증언으로 재구성한다.

"집에 도착했을 때 소매에 빨간 완장을 두르고 단검이 장착된 소총을 어깨에 멘 군인 세 명이 서 있었어요. (중략) 군인은 아버지를 밀쳐냈고 아버지는 솥 옆에 쓰러졌어요."

연합뉴스

책 표지 이미지
[탐구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강순애(1928∼2005)씨가 1941년 동원 과정에서 겪은 일을 이렇게 전했다. 책에 따르면 일제는 한국 여성을 위안소에 보내기 위해 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로 어린 소녀를 유인하거나 아버지가 불렀다고 속인 뒤 감금했다가 배에 태웠다. 이장을 통해 딸을 내놓으라고 강요하거나 인신매매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 측의 행태는 타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서는 여성들이 현장에서 바로 납치되거나 거짓말에 속아 위안소로 들어온 경우가 많았다.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는 1942년 일본군의 침공을 받는다. 이에 따라 현지 네덜란드인들은 수용소로 보내지는데 그중 일부 여성도 위안소로 끌려간다. 21세 때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돼 고초를 겪고 2007년 미국 하원 청문회 등에서 이를 증언한 얀 루프 오헤른(1923∼2019)도 그중 한명이다. 책은 자서전을 토대로 얀의 경험을 전한다.

"장교는 얀을 침실로 끌고 들어갔다. 짜증이 난 그는 칼을 꺼내 얀의 몸에 대고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쳤다."

연합뉴스

얀 루프 오헤른
[전쟁과여성인권아카이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위안부를 동원하려고 국가가 나섰다는 것은 오랜 기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전쟁이 끝난 직후 일본이 가능한 모든 증거물을 파기했고 오랫동안 중요 서류를 숨겨왔기 때문이라고 책은 지적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조직적 관여는 공문서를 통해 나중에 드러난다.

책은 역사에 존재했던 특정 사안을 가리키고 누구나 그 뜻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다만 이런 용어가 사실을 숨기고 유화시키는 완곡어이므로 '일본군 강제 성매매 피해자' 혹은 '강제 동원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 또는 성 노예'라는 용어가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함께 제시한다.

부끄러운 과거가 차츰 드러나자 일본 안팎에서는 일부 피해자들의 증언 중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을 문제 삼아 전쟁 범죄의 책임을 희석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책은 영문도 모르고 낯선 곳에 끌려가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피해자들에게 이런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합당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연합뉴스

위안소 사용 규정
[위안부 문제와 아시아여성기금 디지털 기념관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피해자들의 경험이 너무도 자주 무시된다는 사실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중략) 그들은 두려움과 역겨움이 담긴 언어들로 위안소 생활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든 세세한 부분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특정 사건이 짓눌리고 잊혔을 수도 있다. 이것은 트라우마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줄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아직도 얼마나 극심한지를 말해 준다."

문지희·강재형 옮김. 424쪽.

sewonle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