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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 (수)

[K-VIBE] 강성곤의 아름다운 우리말…잘못 쓰고 있는 표현-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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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

강성곤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본인 제공



◇ 구설수

구설수(口舌數)는 남과 시비하거나 남에게서 헐뜯는 말을 듣게 될 운수다. 곧, 그렇게 된 '상태'다. 그래서 오르는 동작, 행위가 될 수는 없다.

'구설수가 많다/구설수가 있다/구설수가 들린다' 등으로 써야 옳다.

'구설수에 오르다 (X)'

'구설수가 많다 | 구설수가 있다 | 구설수가 들린다 (○)'

'오르다'를 쓰려면 '구설'(口舌)을 써야 바르다.

'구설에 오르다 (○)'

구설을 제외한 다른 대안은 '입길에 오르다','입방아에 오르내리다' 등이다. 비슷한 것으로 '외골수','외곬'이 있다. 한 곳만 파고드는 사람을 이를 때는 '외골수 기업인'과 같이 '외골수'로 적고, '단 한 곳으로만 트인 길' 또는 '단 하나의 방법이나 방향'이라는 뜻을 나타낼 때는 '외곬'으로 적는다.

◇ 난도와 난이도

난도(難度)는 어려운 정도를 말한다. 난이도(難易度)는 쉽고 어려움을 모두 포괄한다. 그래서 '난이도'는 '조절하다', '고려하다' 등의 동사와 어울린다.

난도는 '난도가 높다', '난도가 낮다' 식으로 쓰는 것이 걸맞다.

'난도가 높다 | 난도가 낮다 (○)'

'난이도를 조절하다 | 난이도를 고려하다 (○)'

◇ 봇물을 이룬다고?

'보'란 무엇인가? 보(洑)는 농사를 위해 물을 담아두는 데다. 물을 잘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다. 터지면 일단 비상사태다. 봇물은 '이루는'게 아니다. 어디에 다다르거나 뭘 성취하는 것과 무관하다. '봇물이 터진다'만이 비유적 관용표현이다. 그리고 엄밀히 따져볼 때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써야 원뜻에 맞는다.

'봇물 터지듯 투표 인파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이 마치 봇물 터지듯 다가옵니다'

위의 예시는 틀렸다고는 하기 어려우나 적확한 것은 아니다.

'적군이 봇물 터지듯 밀려오고 있습니다 (○)'

'봇물이 터진 듯이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합니다 (○)'

이런 게 '봇물이 터진다'를 제대로 쓴 텍스트다.

◇ '잠그다'의 반대말

"수출 규제 잠갔다 풀었다. 일본' 수도꼭지 전략'"

어느 신문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잠그다/풀다'가 정확히 반대 개념일까? 일상 말하기에서는 어느 정도 용인되지만, 신문 등 활자 매체에서 이러면 곤란하다. 대상은 수도꼭지.

수도꼭지는 틀거나 잠그는 것이다. '풀다'의 정확한 대척은 '조이다/죄다'다.

덧붙이면, '규제'를 수도꼭지에 비유한 것 자체가 어색하다. 규제란 억누르고 차단된 상태다. 수도꼭지는 그것과 결이 다르다. 그저 평온한 생활 사물로, 억압된 상황에 걸맞지 않다.

가장 적절한 건, '고삐'다.

고삐야말로 억지력 개념이 탑재되는 사물이다. 일본이 수출 규제를 두고 장난쳤던 행위는 '고삐를 조이다(죄다)/풀다'의 메타포가 적절하다.

◇ 굴삭기?

결론부터 말하면 굴착기(掘鑿機)가 맞는다. 이 중기계는 어디까지나 뚫고 파는 것이 이유이자 목적이다. 그러므로 굴착기가 맞다. 삭(削)은 '깎는다'의 의미다. 기계의 본 기능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중기법(重機法) 등 관련 법규에는 '굴삭기'로 돼 있으며 현장 근무자도 '굴삭기'를 여전히 많이 쓴다.

왜일까?

이 말이 일본말에서 유래됐고, 법규 역시 일본법률을 따왔기 때문이다. 일본 어문 법령에는 상용한자(常用漢字)라는게 있다. 말 그대로 일상에서 주로 쓰는 한자로 1천945개를 추렸다.

'착'(鑿)이 복잡하니 당연히 그 범주에 없었고, 대신 음(音)이 '사쿠'(さく)로 같고 의미도 얼추 가까운 '삭'(削)을 거기다 넣은 것이다. 그래서 '굴삭기'가 탄생했고, 그걸 부끄럽게도 우리가 따라 한 꼴이다.

굴삭기, 이제는 버릴 때가 됐다. 굴착기로 바로 세워보자. 참고로 해당 영어인 '포클레인'(poclain)은 원래 제품명이었으나 이제 보통명사가 됐다.

강성곤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전 KBS 아나운서.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가천대 특임교수.

* 더 자세한 내용은 강성곤 위원의 저서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한국어 발음 실용 소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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