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들 "독자들이 높은 수준의 디자인 요구해"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 구간(왼쪽)과 신간(오른쪽) 표지 디자인. 구간은 화가 에곤 실레의 '네 그루의 나무'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2022년 개정판에서는 이옥토 작가의 사진으로 표지 디자인을 교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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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기본적으로 안에 담긴 내용이 중요한 소프트웨어적 특성을 지닌다. 하지만 이에 더해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독특한 감각적 가치, 하드웨어적 특성에 주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표지 디자인의 중요도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31일 출판계에 따르면 부커상을 포함해 노벨문학상 수상의 원동력이 된 한강 작가의 책 '채식주의자'는 2022년 출간 15주년을 맞아 새로운 디자인의 개정판으로 출간됐다. 개정판 표지의 사진은 이옥토 사진작가의 작품이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이옥토 작가의 작품들은 차가운 색감이 특징"이라며 "책 속을 유영하는 금붕어, 시간을 눌러 담은 목련, 계절을 머금은 과일을 소재로 한 책갈피들은 독서가들 사이에서도 인기"라고 설명했다
김영민 교수의 '가벼운 고백'을 구매하면 증정했던 아오리사과 책갈피 역시 이옥토 작가의 작품이다. 이 책갈피는 일부 중고 사이트에서 4만 원이 넘는 가격대에 팔리고 있다. 공짜로 주는 굿즈의 가격이 책 가격의 3배가 넘게 판매되고 있는 셈이다.
김영사 관계자는 "기존 책의 디자인은 독자의 폭을 넓혀 대중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특별판'이나 '리커버판'은 기존에 출간된 책을 분석해 목적과 타깃을 재설정하거나 현재의 트렌드를 적용해 디자인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여러 권의 책을 모으기도 하고, 표현의 핵심 주제를 변경하기도 하며 특정 독자층의 니즈에 맞추기도 한다. 목표가 명확하기 때문에 디자이너에게는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새로운 시도가 가능한 기회기도 하고 독자들에게는 좋아하는 책의 소장할 매력을 줄 수 있다"라며 "기존 표지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 비용이 들어가며 매우 섬세하게 작업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구병모 작가의 '파과'는 2013년 자음과모음에서 처음 출간됐다. 이후 위즈덤하우스에서 두 번의 리커버판으로 재출간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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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디자인을 새롭게 해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2배가 넘었던 구병모 작가의 '파과'는 2013년 자음과모음에서 처음 출간됐다. 이후 위즈덤하우스에서 두 번의 리커버판으로 재출간됐다.
흐릿하면서도 몽환적인 여성의 육체를 주된 이미지로 삼았던 기존 표지들과 달리 최근 리커버판은 강렬한 색채감의 꽃 디자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박연미 디자이너는 "이은정 자수 화가의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피어난 아름다움은 구병모 작가의 한 자 한 자 혼신을 다한 문장들과 닮아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살아가면서 제일 반짝였던 순간들, 기억, 시간, 감정의 조각들을 통해 꿈속 공간, 꿈꾸는 공간을 그려내는 자수 작품들은 신비롭고 환상적인 구병모 월드를 그대로 재현해낸 듯하다. 표지에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가장 행복한 순간, 그 빛나고 아름다운 찰나를 담고자 했다"라고 밝혔다.
올 여름 민음사에서 출간된 세계문학 일러스트 에디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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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민음사에서 출간된 세계문학 일러스트 에디션도 독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권서영, 정다은, 진청 작가가 각각 모파상('달빛'), 헤밍웨이('셰익스피어 글방'), 버지니아 울프('럭턴 유모의 커튼')를 읽고 일러스트를 그렸다.
민음사 미술부 황일선 이사는 "세 일러스트레이터의 아름다운 그림과 유명 작가의 단편들을 아코디언 형식의 책으로 선보였다. 새로운 형식과 아름다운 그림, 예쁜 색감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라고 전했다.
특히 '달빛' 표지를 디자인한 권서영 일러스트레이터는 "붉은 마젠타의 드레스와 파랗고 청아한 밤의 대비는 앙리에트 부인의 마음 속에 어떤 열정이 끓어오르고 있는지를 은유한다"라며 "또 장면마다 고고히 자리를 지키는 달은 부인의 또 다른 연인이자 저항 없이 사랑에 빠지게 하는 마법같은 존재로 표현하고 싶었다"라는 작업 후기를 밝혔다.
미국판 '소년이 온다'의 표지 디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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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과 관련해 해외판들도 눈길을 끌었는데, 황일선 이사는 미국판 '소년이 온다'의 표지 디자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황 이사는 "죽음, 폭력, 상처, 그리고 상실과 치유, 추모에 대한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아주 세련되게 표현한 훌륭한 표지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문학동네 관계자는 "(표지 디자인의 변형은) 도서를 몰랐던 독자들에게는 책에 대해 다시 환기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기존 디자인과는 다른 분위기, 좀 더 특별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책으로 디자인하기 위해 노력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별, 한정이라는 단어에 어울리게 특별한 종이, 인쇄, 후가공 등 제작단가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디자인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라고 부연했다.
[이투데이/송석주 기자 (ssp@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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