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 |
올해 국정감사에선 “국민연금은 매일 885억 원의 적자가 쌓이고 있다. 질문하는 5분 사이에도 3억 원이 추가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돌이켜보면 2006년에도 같은 지적이 있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당시 “연금개혁이 하루 지연되면 후세대에게 전가되는 부채가 매일 800억 원, 연간 30조 원씩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18년이 지난 올해는 하루 적자가 85억 원 더 늘었다.
적자가 나는 건 내는 돈(보험료율)과 받는 돈(소득대체율)의 균형이 안 맞기 때문이다. 현재는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고 생애 평균 소득의 40%를 돌려받는다. 그런데 내는 돈과 받는 돈이 균형을 이루려면 보험료로 소득의 19.7%를 내야 한다. 그렇다 보니 10.7%의 부족분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누적되는 것이다. 현 상태가 이어지면 쌓인 적립금 1147조 원은 2056년 바닥난다. 그리고 후세대는 2057년 월급의 28%를, 2075년에는 36%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
물론 과거 2차례의 연금개혁이 있었다. 1998년 1차 개혁 때는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췄고,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늦췄다. 2007년 2차 개혁 때는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낮추는 대신 65세 이상에게 8만 원의 기초노령연금(기초연금)을 주기로 했다.
국민연금을 설계한 이들을 만나 보면 소득대체율을 70%로 정하고, 대신 지속적 개혁을 통해 보험료율을 3%에서 15%까지 올리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보험료율 인상 논의는 2차 개혁 당시 12.9%로 올리는 정부안이 표결에서 부결된 후 줄곧 제자리걸음이었다.
정부는 올해 9월 4일 연금개혁안을 발표했다. 정부안을 내놓지 않았다고, 혹은 복수안을 내놨다고 비판을 받다가 21년 만에 ‘단일안’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안의 목표는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세대 간 형평성을 높이면서도 노후 소득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보험료율은 현재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현행 수준인 42%를 유지하기로 했다. 동시에 기금수익률을 1%포인트 올리고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기로 했다. 출산을 하면 첫아이부터, 군경력은 실제 근무 기간만큼 크레디트 혜택을 부여한다. 기초연금을 40만 원으로 인상하고, 퇴직연금의 실효성을 높이며, 개인연금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정부안 발표 이후 다시 국회의 시간이 됐다. 그리고 올해는 연금개혁의 ‘골든타임’이다. 내년 이후는 매년 주요 선거 일정이 있다. 국민들은 당위성에는 고개를 끄떡이면서도 실제 보험료 인상은 불편해하기 때문에 선거 전후엔 연금개혁이 어렵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어떻게 될까. 모든 부담은 후세대의 몫이 된다. 매일 쌓이는 적자가 곧 1000억 원 이상으로 늘고, 2056년 기금 소진 후 소득의 36%를 보험료로 내는 예정된 미래가 현실화될 것이다.
연금개혁이 성공한다면? 정부안대로라면 기금 소진 시점은 2072년으로 늦춰진다. 여기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24개국이 도입한 자동조정장치까지 도입하면 최대 2088년까지 기금 고갈을 늦출 수 있다.
프로골퍼 최경주는 어부였던 아버지의 말을 인용해 “고기 떼가 오기 전 그물을 쳐야 고기를 잡지, 고기 떼가 오는 걸 보고 그물을 던지면 늦는다”고 했다. 연금개혁도 기금에 여유가 있을 때 해야지, 재정 적자가 시작되면 늦는다. 연금개혁안이 올해 정기국회에서 무사히 처리되길 손 모아 기도한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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