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4 대한민국 소상공인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축사를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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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범 | 논설위원
대통령 탄핵이나 임기단축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게 거북하지 않은 정국이다. 31일엔 윤석열 대통령이 명태균씨에게 “공천관리위에 김영선이 경선 때 열심히 뛰었으니까 (공천) 좀 해주라고 했다”고 말하는 육성이 공개돼 사람들이 ‘이러다 탄핵인가’ 또 술렁였다.
조국혁신당은 앞장서 “탄핵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조국 대표는 서울 서초동 대통령 탄핵 집회(10월26일)에 3000여명이 참석한 것을 언급하면서 “오동잎 하나가 떨어지면 가을이 온 줄 안다는 말이 있는데 저는 지금 오동잎이 떨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맥락은 다르지만 여당에서도 탄핵 언급이 잦아졌다. 윤상현 의원은 지난 30일 ‘보수의 혁신과 통합’ 토론회에서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2016년 시작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와 똑같다. 데자뷔, 기시감이 든다”고 했다. 8년 전 여당이 친박 대 비박으로 분열해 대통령 탄핵을 막지 못했는데, 지금의 여권 분열 또한 탄핵을 부를 수 있으니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가 갈등을 풀어야 한다는 게 윤 의원의 주장이다. 윤 대통령이 임기단축 개헌을 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정치 원로나 논객들도 부쩍 늘었다.
실제로 현재 상황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와 유사점이 적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을 비교연구한 이철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대통령 탄핵 결정요인 분석’ 논문에서 ‘여당 분열’ 등 몇 가지를 탄핵 요인으로 꼽았다. 지금 여권은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회복불가의 관계이고, 당은 친윤 대 친한 갈등으로 살얼음판이다. 여당이 직전 총선에서 패배해 여소야대의 ‘분점정부’라는 점도 8년 전과 지금의 공통점이다. 이런 구도일수록 ‘대통령 리더십’이 잘 발휘돼야 하는데, 박 대통령처럼 윤 대통령도 의회를 적대시하고 대결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만큼 탄핵소추에 취약해진다. ‘대통령 인기’ 측면에서 윤 대통령도 긍정 평가보다 부정 평가가 훨씬 높다. ‘스캔들’이 탄핵 촉발의 중요 요소인데, 명태균씨를 고리로 김건희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 등이 추가되면서 파문이 번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차이점이 있다. 8년 전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를 통해 대통령의 불법 행위가 확인된 뒤 탄핵소추와 심판이 이뤄졌다. 반면, 지금은 검찰 등 사정기관이 윤 대통령 부부를 철통같이 보호해주고 있어, 수사 결과로 나온 게 아직 없다. 시민들의 분노도 아직은 8년 전처럼 거리의 대규모 촛불로 불붙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탄핵으로 보수가 궤멸하고 정권을 내준 기억이 또렷한 여당이 또다시 탄핵에 동참할 가능성은 현재로서 매우 낮다.
이 모든 게 다 ‘아직은’ 그렇다는 얘기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예측이 어렵다. 하지만 오는 10일 임기 반환점을 맞는 윤 대통령은 남은 2년 반을 일상화된 ‘임기단축 또는 탄핵 얘기들’에 둘러싸인 채 보낼 건가.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신뢰가 바닥인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대로 가면 남은 길은 ①식물대통령 ②자진사퇴 ③탄핵이다.
윤 대통령이 적당한 땜질과 시간끌기로 위기를 넘기려 한다면 식물대통령이 될 것은 자명하다. 대통령이 의료·연금·노동·교육 등 4대 개혁을 말해도 공허하게 들리고, 비상한 외교·안보 상황에서 내놓는 발언에도 100% 믿음이 가지 않는 상황이다. 대통령은 조롱거리가 되고, 국정 동력은 실종되고, 국민들은 계속 스트레스 받는 2년 반이라면, 끔찍하지 않나.
식물대통령 상태에서 국민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른다면, 윤 대통령이 임기를 다 마치지 않고 자진사퇴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그마저도 거부한다면 민심의 폭발로 탄핵의 길에 놓이게 될 수 있다.
식물대통령, 자진사퇴, 탄핵 모두 국가적 불행이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분명하다. 김 여사 문제를 포함한 국정 전면 쇄신 밖에 답이 없다. 김 여사 문제에 대해 국민이 볼 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단호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사과는 기본이고, 제기되는 의혹들을 밝혀낼 수 있도록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길이다. 문제될 게 없다면, 특검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나. 정부가 이 위기에 이를 때까지 대통령과 그 배우자 옆에서 곁불만 즐긴 참모와 공직자들도 바꿔야 한다. 2년 반은 그냥저냥 참아내기에 너무 긴 시간이지만, 새출발하기에도 아직은 늦지 않은 시간이다.
황준범 논설위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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