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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 (목)

50살 넘어 응원받아 본 적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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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5년 4월 보스턴에서 열린 보스턴 마라톤 결승선 근처에서 관중들이 주자를 응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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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완주하고 살아서 서울 가는 기차야.”



지난 일요일 오후 5시21분에 문자가 찍혔다. 함께 간 여행지에서 자기가 한달 전 달리기를 시작했다며 아침 훈련한다고 설치다가 넘어져 한쪽 팔을 통째로 갈고 나타난 게 엊그제 같은데 불과 2년여 만에 마라톤 풀코스 완주라니! ‘장하다, 내 새끼!’ 라는 말이 자동문장 완성법으로 스마트폰에 적혔다. 모임 때마다 딱 한잔만 부딪히자며 그렇게 유혹해도 3개월을 의연하게 버티더니 52살 동갑내기 친구가 생애 첫 42.195㎞의 결승선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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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켓팅’(피 터지게 치열한 티켓팅)이 치열한 주요 마라톤 대회에서 50~60대야말로 최근 달리기 유행과 무관한 골수 러너층을 구성하고 있는 마당에 내 친구의 완주, 그것도 5시간을 훌쩍 넘는 기록이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맨날 같이 술 먹고 시시덕거릴 줄만 알았던 친구가 풀코스를 완주하다니, 충격을 넘어 그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 기분이었다. 풀코스 한번 뛰면 몇년은 늙는다던데, 건강을 생각하면 10㎞ 이상 뛰는 건 되레 안 좋다던데, 다시는 뛰고 싶지 않지? 고춧가루를 뿌리기 위해 축하 밥을 사준다고 불러냈다. 완주 이틀 만에 본 친구의 얼굴은 기대보다 환했고 계단과 턱을 넘을 때 어기적거렸으며 입은 평소와 다름없이 살아 있었다.



“20㎞ 지나고부터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해서 계속 멈춰서 스트레칭하고 뛰기를 반복하니까 죽겠더라고. 나보다 앞선 그룹에서 달리던 사람들도 막 앰뷸런스에 실려 가더라. 35㎞ 지나면서는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었어. 엄청 오래 뛴 거 같은데 확인해보면 1㎞도 더 못 갔어. 근데, 길가에서 사람들이 응원해주니까 멈출 수가 없는 거야. 또 먼저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는 동호회 사람들, 설레발 치더니 그럴 줄 알았다 할 사람들, 그니까 너 같은 인간들도 머릿속에 떠올라서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 거의 정신 나간 상태로 결승점에 도착했는데 뛰지도 서지도 앉지도 못하겠더라.” 입으로는 지옥을 이야기하면서 눈은 왜 웃는데?



친구는 “달리기는 자기와의 싸움이 맞지만 개인 경기가 아닌 팀 스포츠”라고 말했다. 이어폰을 꼽고 혼자 ‘런총각’(달리기 앱의 목소리)의 “할 수 있습니다!” 우쭈쭈를 들으며 달리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달리기를 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원치 않게 뒤엉킨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의 피로함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기 위함이 아닌가? 내 친구 역시 내가 왜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냐고 기자처럼 물어봤을 때 “○○○, 그 자식이 나를 달리게 했지”라며 잠시 부르르 떨었다. 친구는 자신보다 오래 달린 친구의 권유로 일주일에 한번씩 동네의 천을 함께 달리는 동호회에 가입하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같이 달리는 것보다 중요한 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야. 혼자 달리고 그날그날의 훈련기록을 밴드에 올리면 격려도 받고 의무감 같은 것도 생기지. 나랑 비슷한 수준의 동료가 하프를 도전하겠다고 하면 나도 같이 해볼까? 생각도 드는 거고. 무엇보다 죽을 거 같은 결승선 앞에서 내 완주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정말 큰 힘이 돼. 경기가 끝난 다음까지 말이야.”



친구가 말하는 ‘팀 스포츠’에는 함께 뛰는 동료들 뿐 아니라 길가에서 응원하는 이들까지 포함됐다. 전공의 시절부터 20년간 달린 정세희 재활의학 전문의도 저서 ‘길 위의 뇌’에서 전세계 러너들이 선망하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가 최고인 이유는 응원 때문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턴을 지나) 왼쪽으로 꺾으면 드디어 눈 앞에 피니시 라인이 나타난다. 이제 사람들의 함성은 혼이 다 빠질 지경이다. 함성은 고층 건물에 반사되어 더욱 증폭된다. … 나도 모르게 오른 팔을 들어 올려 크게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 손짓을 따라 함성의 물결이 나를 따른다.” 저자는 언덕 많기로 악명높은 보스턴 참가를 위해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남산을 달렸던 시간과 완주의 기쁨을 고백하면서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던 건 역시 응원이었다”고 썼다.



친구의 말을 듣고 책을 보면서 ‘응원받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생애주기에서 나이와 정확히 반대의 곡선을 그리는 건 응원일 것이다. 아기 때는 뒤집기와 걸음마 같은 남들이 모두 하는 걸 해냈다고 함성과 박수를 받았지만 중년을 넘어가며 폭탄주 원샷할 때 받았던 마지막 응원마저 사라졌다. 쿨병 환자인 나는 “흥, 응원 따위”라며 정신승리를 위해 애썼으나 그 말할 때 반짝이던 친구의 눈빛이 맴돈다. “하프 따위, 풀코스 따위 다 오버고, 집착이라고” 떠들고 다녔던 나를 내년에 대회에서 만나더라도 모른 척 해주길!





김은형 문화데스크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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