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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 (수)

단톡방서 조합장에 “미친개” 비난···대법 “모욕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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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법원 전경.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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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장을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도적X’ 등 원색적인 표현을 써서 비난한 조합원에 대해 모욕 혐의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당사자들의 관계, 해당 표현을 하게 된 경위 등을 엄격하게 고려해 모욕죄 성립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지난 8일 모욕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15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0일 밝혔다.

A씨가 조합원인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회는 2018년 10월 경기 평택시에 주택조합설립인가를 신청했다. 평택시가 보완자료 제출을 요구하자 추진위는 이듬해 1월 신청을 취하했고, 이후 1년이 다 되도록 재신청 절차를 밟지 않았다. 추진위가 조합원들에게 회계 서류를 공개하지 않고 추진위원장인 B씨의 배우자가 대표로 있는 업무용역업체 등이 이 사업과 관련해 과도한 이익을 취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추진위와 조합원 간에 갈등이 생겼다.

A씨 등 조합원은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비대위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추진위를 비판하는 글들을 올렸다. A씨는 2019년 12월부터 2020년 4월까지 게시한 여러 글에서 ‘도적X’ ‘양두구육의 탈’ ‘법의 심판을 통해 능지처참’ ‘적반하장의 극치’ ‘미친개한테는 몽둥이가 약’ 등 표현으로 B씨를 비난했다. A씨는 법정에서 이러한 표현을 쓴 경위에 대해 “비대위 회원들에게 B씨의 불법사실을 널리 알리고 앞으로의 대응방안을 설명하려는 취지였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B씨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B씨에 대한 모욕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A씨에게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도 같은 판단을 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이 표현들이 포함된 글은 A씨의 B씨에 대한 부정적·비판적 의견이나 감정이 담긴 경미한 수준의 추상적 표현 또는 B씨를 대상으로 하는 무례한 표현이 담긴 글에 해당할 뿐 B씨의 외부적 명예를 침해할 만한 표현이 포함된 글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어떠한 표현이 모욕죄의 모욕에 해당하는지는 상대방 개인의 주관적 감정이나 정서상 어떠한 표현을 듣고 기분이 나쁜지 등 명예감정을 침해할 만한 표현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다”라며 “당사자들의 관계, 해당 표현에 이르게 된 경위, 표현 방법, 당시 상황 등 객관적인 제반 사정에 비춰 상대방의 외부적 명예를 침해할 만한 표현인지를 기준으로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어떠한 표현이 개인의 인격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것이거나 상대방의 인격을 허물어뜨릴 정도로 모멸감을 주는 혐오스러운 욕설이 아니라 상대방을 불쾌하게 할 수 있는 무례하고 예의에 벗어난 정도이거나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비판적 의견이나 감정을 나타내면서 경미한 수준의 추상적 표현이나 욕설이 사용된 경우 등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외부적 명예를 침해할 만한 표현으로 볼 수 없어 모욕죄의 구성요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개인의 인격권으로서의 명예 보호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는 모두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으로 각자의 영역 내에서 조화롭게 보호돼야 한다”며 “따라서 모욕죄의 구성요건을 해석·적용할 때에도 개인의 인격권과 표현의 자유가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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