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위협 설명하는 국정원장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국정원은 이날 북한이 러시아에 군을 파병한 대가로 군사기술을 이전받고 있으며, 미국 대선 이후 7차 핵실험이나 정찰위성 발사에 나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회사진기자단 |
우크라이나 전쟁이 만든 안보 지형 균열 속에서 러시아와 군사적 밀착·공조를 선택한 북한 정권이 북한군 파병에 즈음해 안팎의 문제에 봉착했다.
북한군을 명분 없는 전쟁터에 밀어넣은 것에 대한 주민 반발이 예상보다 크고 파병된 정예 병력도 러시아군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미사일 기술 확보와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나름 중대한 결단을 내렸지만 만만찮은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29일 국가정보원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 청사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러시아 파병에 대한 북한 내부 비판이 상당한 수준이라고 보고했다. 정보위 여야 간사인 이성권 국민의힘·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언론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전했다. 국정원은 "북한 당국의 단속 조치에도 파병 소식이 북한에 퍼지면서 '왜 남의 나라를 위해 장병들이 희생해야 하느냐' '강제로 차출될까 걱정된다'는 등의 주민 동요가 감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내부 반발 여론을 차단하기 위해 파견 사실 은폐에 나섰다. 국정원은 "북한은 파병 사실이 유출·확산되는 것을 의식해 내부 보안대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파병 군인 가족들에게 병사가 훈련에 갔다고 거짓 설명을 하는 정황이 포착됐다"고 설명했다. 또 "북한이 군 기밀 누설 위험을 이유로 군 장교의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차출 부대 소속 병사들에 대한 입단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에 간 북한 장병들이 러시아군과 함께하는 훈련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정황도 파악됐다. 국정원은 "러시아군이 북한군에게 '포격' '발사' 등 러시아 군사용어 100여 개를 교육하고 있으나 북한 군인들이 이를 어려워하고 있다"며 "(북한군과 러시아군 사이) 소통 문제 해결이 불투명하다는 예측"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러시아에 파병된 군인들은 총알받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섣불리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국정원은 "파병된 군인은 일부 10대 후반이고 주로 20대 초반으로 추정된다"며 "그러나 기본적으로 폭풍군단에서 받는 훈련 수준이 있기 때문에 전투 능력을 결코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북한군이 현대전에 투입되는 게 최초이기 때문에 전투력이 미지수인 부분이 있다.
이날 국정원은 러시아 파병 결정이 김정은 위원장의 '자충수'로 귀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놨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장병들에게 탈영 선전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포로로 잡힌 북한 군인이 한국으로 귀순을 요청하면 그는 대한민국 헌법상 우리 영토에 있는 국민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스스로 암살 위협을 느끼고 있는 듯한 모습도 포착됐다. 국정원은 김 위원장 일가 동향과 관련한 보고에서 "올해 김정은의 공개 활동이 작년에 비해 현재까지 110회, 약 60% 증가한 가운데 북한이 김정은에 대한 암살 등을 의식해 통신 재밍차량 운용, 드론 탐지장비 도입 추진 등 경호 수위를 격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이번 파병을 오히려 군사정보를 획득할 기회로 보고, 모니터링팀(참관단)을 파견하는 방안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국정원은 참관단 파견에 대한 정보위원들의 질문에 "군사정보와 관련해 절호의 기회"라면서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검토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답변했다. 일단 정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유럽연합(EU)에 북한군 동향을 브리핑하기 위해 벨기에에 파견한 정부 대표단 가운데 일부를 우크라이나로 보내 다음달 초까지 현지 상황 파악에 나설 방침이다. 이후 정부는 참관단 규모와 인적 구성 등을 구체적으로 검토할 전망이다.
러시아 가는 北 최선희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지난 28일 평양국제비행장에서 러시아로 출발하기에 앞서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대사와 악수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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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북한은 러시아와 추가 파병 문제, 국제사회 비난에 대응하기 위한 논의를 가속화하는 모양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최선희 북한 외무상 일행이 러시아를 공식 방문하기 위해 전날 평양을 출발했다고 보도했다. 최 외무상의 러시아 방문은 지난달 이후 한 달여 만이다. 국정원은 이에 대해 "최선희가 고위급 채널을 통한 추가 파병, 반대급부 등 후속 협의를 한 것으로 본다"면서 실제 논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 외무상이 러시아 방문을 통해 김 위원장의 모스크바 방문을 조율할 개연성이 있다는 예측도 제기된다. 국정원은 이번 러시아 파병 명분인 지난 6월 맺은 '북·러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에 따라 북한이 자국 노동자 4000여 명을 러시아에 보냈다고 분석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북한이 러시아에 대한 군사무기 지원을 넘어 특수부대 파병이라는 위험하고 전례 없는 일을 벌이고 있다"고 성토했다. 또 "러시아가 북한에 민감한 군사기술을 이전할 가능성도 문제이지만, 6·25전쟁 이후 현대전을 치러보지 않은 북한이 우크라이나전에서 얻은 경험을 100만명이 넘는 북한군 전체에 습득시킨다면 우리 안보에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위협에 대응해 우방국들과 공조를 이어갈 것"이라며 "한국과도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상준 기자 / 김성훈 기자 / 우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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