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29 (화)

[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67] 재난 공동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83년 뉴욕을 떠나 알래스카의 앵커리지를 거쳐 서울로 오던 KAL 007기가 소련 사할린 영공에서 격추되어 승무원과 승객이 전원 사망한 참사가 있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인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미국 정부는 군용 비행기에서만 사용하던 GPS를 민간 비행기에 개방했다. 이후 비행기 위치가 어디인지 쉽게 알 수 있었고, 이런 참사는 피할 수 있었다. 비행기 여행은 조금 더 안전해졌다.

1994년에 성수대교가 무너져 등교하던 학생들을 포함해서 32명이 사망했다. 이 참사 이후 1995년에 ‘시설물 안전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이에 근거해서 시설안전기술공단이 설립되어 국가 주요 시설물과 기반 시설의 안전 확보를 위해 연구와 조사를 담당하기 시작했다. 1995년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로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생겼고, 이후 도로를 팔 때 반드시 가스 회사와 사전 협의를 하는 절차가 의무화되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뒤에 전국 고층 건물과 시설에 대한 안전 평가가 실시되고, 위험하다고 평가된 당산철교가 철거 후 다시 지어졌으며, 관련 법령도 더 엄격하게 개정되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에 객차 내장재는 모두 불연 소재로 바뀌었고, 비상 인터폰과 CCTV도 확대되었으며, 2·18안전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이후에 화학물질의 수입·제조 업체에 대해 유해성 심사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재난 생존자와 유가족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위험과 재난에 민감해지며, 재난을 대비하는 여러 조치와 제도를 만드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한다. 위에서 언급한 법령 개정, 안전 재단 설립에도 희생자들의 피와 유가족의 눈물 나는 노력이 있었다. 우리가 지금 조금 더 안전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면 그것은 재난 생존자와 유가족의 힘든 싸움이 열매를 맺었기 때문일 것이다. 재난 희생자들의 죽음은 나의 삶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재난 공동체’이다. 오늘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맞아 재난 공동체의 의미를 곱씹어 본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