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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화)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54] 토스카나의 여섯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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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르조 바자리, 토스카나의 여섯 시인, 1544년, 목판에 유채, 132.08 x 131.13 cm, 미니애폴리스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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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화가이자 저술가였던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1511~1574)가 공학자이자 시인 루카 마르티니의 주문을 받아 그린 위대한 시인들의 초상화다. 화가, 주문자, 그리고 초상화 주인공은 모두 피렌체를 중심에 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림 속 여섯 명이 동시대를 살았던 게 아니니,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장면은 상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은 시를 통해 시대를 초월해 대화한다. 제일 왼쪽에는 크리스토포로 란디노와 마르실리오 피치노가 있다. 이 둘은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으며 고대 철학을 연구해 신플라톤주의의 초석을 닦고 시와 수사학을 연마해 인문학의 꽃을 피웠다. 그러나 이들은 월계관을 쓴 선배 시인들 뒤로 물러나 있다. 초록색 책을 든 이는 서정시 ‘칸초니에레’로 이후 수세기 동안 유럽의 시문학을 지배한 페트라르카, 그 옆에 ‘데카메론’의 보카치오가 섰다. 제일 오른쪽에는 사랑을 노래한 소네트로 일가를 이룬 귀도 카발칸티가 있다. 이들 가운데 홀로 앉아 좌중을 휘어잡은 이가 바로 ‘신곡’의 단테 알리기에리다. 이들은 그때까지 신의 언어나 다름없던 라틴어 대신 토스카나 방언으로 시와 산문을 썼고, 그 덕에 토스카나어는 모든 이탈리아인의 문화 언어가 됐다.

단테의 테이블에는 천문과 지리의 상징이 놓였다. 시인의 대화는 세상의 이치와 우주의 섭리를 아울러 종횡무진한다. 로마 제국 이래 수세기 동안 서로 다른 체제와 문화를 가진 도시들로 분열된 채 경쟁하던 이탈리아에서 토스카나가 압도적 우위를 차지했던 건, 그들의 언어가 바로 문화와 학문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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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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