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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화)

[김희원 칼럼] 문제는 김 여사 아닌 윤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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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 탓한다고 대통령이 면책되나
나라와 아내 사이 선택할 자유 없어
공천개입 의혹, 검찰 장악 등 책임져야
한국일보

조국(가운데) 조국혁신당 대표와 한창민(왼쪽) 사회민주당 대표 등이 26일 서울 대검찰청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선언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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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에게 ‘나라와 아내 중 선택하라’는 요구가 보수지 칼럼에 실리고, 야당의 집회 팻말에 등장했다. 김건희 여사 의혹에 대한 분노가 그만큼 커졌다. 대통령 지지율은 20%(25일 한국갤럽)로 취임 후 최저다. 그러나 정치 구호라면 모를까, 성립할 수 없는 양자선택이다. 국정의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에게는 사적 관계를 공직에 앞세울 자유가 없다. 반대로 대통령직을 버린다고 해서 김 여사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김 여사가 대외활동을 중단하고 유배 가듯 칩거하면 모든 혐의가 없던 일이 되나. 이제 윤 대통령이 선택할 시간이 아니라 책임질 시간이다.

문제의 핵심은 선 넘는 영부인이 아니라, 그의 개입을 받아들이고 의존하는 대통령이다. 김 여사 혼자 사고를 쳤고 윤 대통령은 아내를 보호하는 순정남인 듯 말하는 건 우스운 왜곡이다. 배우자 처벌을 피하려 검찰, 감사원, 국민권익위, 방심위 등 국가기관을 흔들고 비튼 것이 대통령이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문자를 주고받은 게 김 여사라고 해서 윤 대통령이 공천개입 의혹에서 발뺌할 수 없다. 명씨와 관계자 강혜경씨에 따르면 조작된 여론조사, 공짜 여론조사를 윤석열 캠프가 선거일까지 이용했다는 건데, 정권의 정당성이 뿌리 뽑힐 의혹이다. 김 여사 라인을 탓한다고 윤 대통령이 면책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집무실 책상에 올려둔 명패 문구('The BUCK STOPS here!')대로, 모든 책임은 대통령이 져야 한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책임을 통감하거나 잘못을 인정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회동한 장면을 보라. 긴 탁자에 두 손을 얹고 눈을 부릅뜬 윤 대통령은 추궁하는 검사 같았고, 맞은편에 정진석 비서실장과 앉은 한 대표는 취조당하는 피의자 모습이었다. 메시지는 뚜렷하다. 보스는 나다, 제언 따위 듣지 않겠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회동에서 “헌정을 유린하는 야당과 같은 입장을 취할 경우 나로서도 어쩔 수 없겠지만 나는 우리 당 의원들을 믿는다”고 말한 것은 특검 거부와 다를 바 없다. 그게 아니라면 회동 직후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부를 이유가 없고 추 원내대표가 “(특검법은) 반헌법적 내용이고 대부분 의원이 같은 생각”이라 말할 필요가 없었다. 윤 대통령이 다음 날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한 것도 비판여론에 굽히지 않겠다는 고집일 터다.

한 대표가 요구한 특별감찰관을 놓고 여당이 분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특별감찰관이 임명된들 검찰이 덮은 영부인 혐의를 밝히기 어렵고, 대통령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 의혹을 방지하기도 힘들 것이다. 이석수 초대 특별감찰관 말마따나 이미 “실기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대통령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특검을 받아들여 김 여사를 법대로 처리해야 그나마 국민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다. 검찰을 쥔 손을 거두고 독립성을 보장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는,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취임선서로 돌아가야 한다.

윤 대통령이 정치적 궁지에서 벗어나려 다른 선택, 진짜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가뜩이나 남북관계가 불안한데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은 러-우 전쟁에 파병된 북한군을 폭격해 심리전에 쓰는 안을 여당 의원과 논의했다. 대통령 주위를 둘러싼 군사모험주의와 정권의 위기를 외부로 돌리려는 오판이 결합해 전쟁 위험이 현실이 될까 공포스럽다. 특검이나 특감을 놓고 싸우는 것보다 이것이 중요하다. 나라를 파멸로 이끄는 안보 위기만큼은 합심해 막아야 한다.

김희원 뉴스스탠다드실장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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