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족 공동체 개론' 출간…"고려, 고구려·발해 계승 관계 전혀 없어" 주장 반복
중화민족 공동체 개론 |
(베이징=연합뉴스) 정성조 특파원 = 중국 정부가 올해 3월 발간·보급한 '중화민족 공동체 개론' 대학 교재가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변방 역사로 서술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28일 연합뉴스가 확인한 대학생용 '중화민족 공동체 개론' 교재(국가민족사무위원회 제작·이하 '개론')는 고구려와 관련해 "(당나라 시기) 동북방에는 고구려, 발해 등 변방(邊疆) 정권이 연속해 있었다"며 "그들은 모두 한문·한자를 썼고 역대 중앙(중국) 왕조의 책봉을 받았다"고 서술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2002∼2007년 시행한 '동북공정' 등을 통해 현재 중국 영토 내에 과거 존재했던 역사를 '중국 역사'로 왜곡 기술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고, 한반도와 만주에 걸친 고구려 역사가 '중국 변방 정권'이었다는 주장을 체계화하고 있다.
'개론'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주창해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지시에 따라 '중화민족 공동체'를 개념화한 최초의 통일적 교과서라고 중국 신화통신은 평가했다.
총 377쪽 분량으로 선사시대부터 시 주석이 집권한 2012년 이후 상황까지 현재 중국 영토 내 여러 민족의 역사를 정리했다.
이 교과서에서 '고구려'는 30여 차례 언급되는데, 일관되게 고구려 역사를 한반도와 분리해 중국에 귀속시키고 있다. 동북공정 이후 중국이 고구려에 대해 자주 써온 '변방 (소수)민족 정권'이라는 표현이 '변방 정권'으로 한층 명확해지기도 했다.
'개론'은 "918년 왕건이 조선반도(한반도)에 신라인을 주체로 고려 왕조('왕씨 고려')를 세웠는데, 약칭이 마찬가지로 '고려'지만 이전의 고구려 정권('고씨 고려') 및 당나라 번속이던 발해국과는 전혀 계승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그간 한국 학계에서 여러 차례 논박됐다. 993년 고려를 침공한 요나라(거란) 장수 소손녕에게 서희가 고려의 고구려 계승 의식을 명확하게 설명한 것 등 사료로도 반박된다.
리다룽 중국사회과학원 중국변강연구소 국가·강역이론연구실 주임은 '개론'이 출판된 무렵인 올해 3월 발표한 '왜 고구려가 역사상 우리나라(중국) 동북 지방정권이고 다른 국가와는 계승 관계가 없는가'라는 글에서 중국 사서 '송사'(宋史)가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표현한 대목을 '오류'로 규정하고 "이후의 사서도 기본적으로 이런 잘못을 따라 기술됐다"며 중국 사료조차 부정한 바 있다.
중국이 공식화한 교과서 '개론' 역시 고구려와 중국 왕조의 조공·책봉 관계와 외교문서 교환 등을 각주로 자세히 설명한 것과 달리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것이 아니라는 대목에서는 별다른 근거를 내놓지 않았다.
'개론'은 또 "중원과 동북 각 족군(族群) 문화의 영향을 받아 고구려의 세력이 장대해졌다"거나 "고고학적 발견 결과 위(魏)·진(晉) 이래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청룡·백호·주작·현무 및 복희·여와 등 선명한 중화문화의 각인이 다수 남아있다"며 고구려가 '중화민족'의 일부였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주중대사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개론' 문제는) 올해 상반기에 확인했던 내용으로, 역사 왜곡과 관련해서는 중국에 계기가 있을 때마다 시정 요구를 해왔다"며 "요구하고는 있으나 시정이 충분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은 이달 들어 '개론' 내용을 일반 대중에 공개하는 온라인 시리즈 강좌도 개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홈페이지를 통해 10여개 강의를 올리기도 했다.
한편, 중국의 고구려사·발해사 왜곡 움직임은 최근 당국의 고고학 강조 흐름 속에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22년에는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베이징 국가박물관에서 연 고대 유물 전시회에서 한국 고대사를 소개하면서 고구려와 발해를 고의로 빼 한국 측 항의를 받은 게 대표적이다.
작년에는 발해 도읍 팔련성(현 지린성 훈춘) 사찰 유적지에서 불교 유물이 출토됐다며 "중국의 통일 다민족 국가 형성 과정을 실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xi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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