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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토)

‘보통의 가족’은 왜 실패했나 [라제기의 슛 & 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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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영화 '보통의 가족'은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한 형제를 현미경 삼아 지금 한국 사회를 들여다본다. 마인드마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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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개봉한 한국 영화 ‘보통의 가족’은 꽤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다. 등장인물들의 면면이 지금 이곳의 어떤 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심리적 내전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했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두 가족이 스크린 중심에 있다. 재완(설경구)과 재규(장동건)는 형제다. 둘은 대비되는 삶을 산다. 재완은 잘나가는 변호사이고, 재규는 명망 높은 외과의사다. 사회지도층과 혈육이라는 공통점을 빼면 둘은 전혀 다르다. 재완은 세속적이다. 돈을 많이 준다면 살인을 과실치사로 만든다. 재규는 인술을 펼치는 정의로운 사람이다. 재완이 고가 수입차를 타는 반면 재규는 대형 국산차를 운전한다. 아내들도 대조적이다. 재완의 아내 지수(수현)는 어쩌다 상류층에 편입한 떡집 딸이다. 재규의 아내 연경(김희애)은 사회복지 활동에 열중하는 교양 넘치는 여인이다.

자식들이 ‘협업’해 사고를 쳤을 때 재완과 재규의 반응은 역시나 가치관대로다. 재완은 감싸려 하고 재규는 처벌하려 한다. 하지만 막바지에 둘이 전혀 반대의 선택을 하며 반전이 만들어진다. 연경이 재완의 딸 혜윤(홍예지)을 위해 봉사활동 위조 증명서를 아무렇지도 않게 발급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는 ‘법 기술자’로 욕먹는 국내 법조인들과, 내로남불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강남 좌파들을 은유해낸다.

‘보통의 가족’이 품고 있는 메시지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통의 가족’을 들여다보고 싶어서다. ‘보통의 가족’은 서술한 내용에서 가늠할 수 있듯 사회적 인화성이 강한 영화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 ‘덕혜옹주’ 등 화제작을 만들어온 허진호 감독의 신작에 유명 배우들이 출연했다. 완성도가 높기도 하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24일까지 38만 명이 봤다.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어려울 듯하다. 왜 그런 걸까.

‘보통의 가족’보다 앞서 지난 1일 극장가에 선을 보인 ‘대도시의 사랑법’은 어떤가. 언뜻 발랄한 청춘남녀의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이나 성소수자라는 묵직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정숙함으로 여성을 평가하려 드는 한국 사회의 통념, 동성애에 대한 혐오 등을 경쾌한 화법으로 표현해 냈다. 1,000만 영화 ‘파묘’의 김고은이 주연이다. 24일까지 이 영화를 찾은 관객은 68만 명이다. 역시나 손익분기점은 멀어 보인다.

‘보통의 가족’과 ‘대도시의 사랑법’의 흥행 부진에서 불길한 징후가 읽힌다. 화제성과 완성도를 겸비한 영화면 대박까지는 아니어도 ‘중박’ 정도는 해야 한다. 처음부터 눈길을 끌거나 흥행 뒷바람이 불면서 관객들이 극장에 모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보통의 가족’과 ‘대도시의 사랑법’은 무기력하게 극장에서 물러나게 생겼다.

코로나19 대유행 후유증으로 극장 관객 수가 예전 같지 않자 영화계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영화가 좋으면 관객은 극장에 오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극장 자체가 사람들의 생활과 뇌리에서 멀어진 건 아닐까. ‘범죄도시4’나 ‘베테랑2’ 같이 믿고 보는 영화라는 확신이 안 서면 극장으로 발길이 움직이지 않는 걸까. 영화 2편만으로 시장 상황을 섣불리 판단할 수 없으나 극장가는 예전으로 쉬 돌아갈 수 없는, 어떤 변곡점을 지난 듯하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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