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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토)

“꿈의 치료제” “부작용 심각”…‘머스크 비만약’ 열풍 속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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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 마 처방에 비대면 진료 금지 검토, 미용 목적 시 부작용 심각”

“비만 치료제 편의성 경쟁 각축, 식품 등 연계 산업 파급 효과 관심”

경향신문

지난 10월 17일 서울 시내 한 약국에 비만 치료제 위고비 입고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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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한국에서도 비만 치료제 ‘위고비’ 대란이 시작됐다. 지난 10월 15일 국내 출시된 위고비는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이다. 위고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와 할리우드 배우 등 유명인사들이 체중 감량 비법으로 소개해 ‘꿈의 비만 치료제’로 명성을 얻었다. 국내 출시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에는 비만 질환이 없는 사람에게도 위고비를 처방해주는 ‘병원 성지 리스트’가 돌고 있다. 비대면 진료와 해외직구 등을 통해 무분별하게 유통돼 품귀현상도 빚어졌다. 오남용 우려가 커지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월 23일 비대면 진료 처방 제외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위고비 출시가 비만 치료제 시장 판도를 어떻게 바꿀지 주목하고 있다. 비만에 대한 인식이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닌,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재정의되면 관련 산업에 파급 효과를 줄 수 있어서다. 위고비가 한국에서도 성공하면 경쟁사인 일라이릴리의 비만 치료제 ‘마운자로’의 국내 출시도 당겨져 시장은 더 커질 전망이다. 위고비보다 뛰어난 체중 감량 효과를 내는 마운자로는 지난 7월 국내 판매 허가를 받았으나 공급량 부족 등으로 출시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다. 제약 업계는 향후 체중 감량의 질을 높이는 치료제 경쟁이 이어져 환자의 편의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의료계에서는 위고비를 계기로 비만 치료제 오남용에 대한 부작용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GLP-1 약 게임체인저로 등극

위고비는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선보인 비만 치료제다. 애초 당뇨병 치료제인 오젬픽으로 출시됐으나 체중 감량 효과가 확인되면서 2021년 미국에서 비만 치료제로 처음 판매됐다. 약물이 충전된 주사제 형태로 복부와 허벅지 등에 주 1회 투약해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 30 이상인 ‘비만 환자’가 처방받을 수 있다. 또 BMI 27~30 미만인 ‘과체중’이면서 한 가지 이상 동반 질환이 있는 이들도 처방 대상이다.

지난 10월 23일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위고비 오남용 문제가 거론됐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식약처와 오남용 의료 의약품 지정을 협의해 비대면 진료 처방 항목에서 (비만 치료제를)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온라인이 문제가 되고 있어 집중 모니터링을 하고 있고, 관세청과 협업해 해외직구를 차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고비는 주 1회 0.25㎎으로 시작해 4주 간격으로 용량을 늘린다. 펜 모양의 주사제 한 개가 4주 투약분이다. 제품 공급 가격은 한 펜(4주 분량)당 37만2025원으로 책정됐다. 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 모두 개인 부담이다. 유통비용과 진료비 등을 고려하면 환자가 실제로 치러야 할 가격은 40만~100만원으로 천차만별이다. 4주 비용 기준으로 미국은 180만원, 덴마크는 49만원, 독일은 45만원, 일본은 39만원(보험적용)이다.

위고비는 임상시험 결과 68주 투약에서 약 15%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국내 출시된 노보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삭센다’는 56주간 임상에서 평균 7.5% 감량 효과를 보였다. 게다가 삭센다는 매일 1회 주사를 투약해야 하는 만큼 불편함이 컸다. 위고비와 삭센다는 모두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GLP-1) 계열 치료제다. GLP-1은 음식을 섭취했을 때 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혈당 조절에 중요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식욕 억제를 돕는다. 적은 식사로도 포만감을 오래 느낄 수 있게 해 비만 치료 시장에서 ‘게임체인저’로 평가받는다.

과거에도 비만을 치료하기 위해 중추신경계를 자극하는 식욕 억제제와 지방흡수 억제제 등이 있었다. 하지만 부작용(고혈압·두통·우울증·자살 충동 등)보다 체중 감량 효과가 미비해 퇴출 단계를 밟고 있었다. 이에 반해 GLP-1형 비만 치료제는 체중 감량 효과가 확실하고, 뇌졸중과 심장마비 등 비만 관련 질환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21세기 만병통치약’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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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7일 서울 종로구 새종로약국에서 약사가 비만 치료제 위고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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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염·탈모·근손실 등 부작용도

미국 월가에서는 GLP-1형 비만 치료제가 보편화할 경우 식료품과 유통 등 산업 전반을 뒤흔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노보노디스크는 위고비 성공으로 ‘덴마크 국민기업’이 됐다. 시가총액이 549조원으로 뛰면서 루이뷔통(482조원)을 제치고 유럽 기업 중 시총 1위에 올랐다. 위고비 하나가 덴마크 경제를 견인한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세계 제약사 중에서는 미국 일라이릴리(약 1197조원)에 이은 시총 2위다. 월가에서는 뉴욕증시를 주도하는 대표 종목인 ‘M7’(7개 대형 기술주) 종목에 일라이릴리가 편입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올해 상반기 미국 증시에서는 일라이일리 등 비만 치료제 주가가 M7 평균을 웃돌았다. 글로벌 투자 은행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GLP-1을 투약하는 가계의 월간 식료품 구매액이 약품을 투약하지 않는 집단보다 6~9% 낮았다. 비만 치료제는 음식에 대한 수요를 떨어뜨리고 있다”며 “(비만약으로 인한) 다양한 현상이 식품 업계를 비롯한 전체적인 산업 구조를 뒤흔들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240억달러(약 34조원)였던 비만 치료제 시장이 2030년 1300억달러(약 179조원)로 커질 것이라 내다봤다.

부작용도 있다. 임상 결과, 비만 치료제를 허가 범위 내로 써도 구토와 설사, 변비, 담석증, 모발 손실, 급성췌장염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제2형 당뇨병 환자는 저혈당·망막병증 등이 발생할 수 있어 해당 환자는 신중히 투여해야 한다. 하버드대학 의대 연구팀은 지난 7월 “드물지만 (위고비 사용 시) 실명이 발생할 수 있다. 이미 시력을 상실한 환자의 경우 의사와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대한비만학회도 비만 치료제 오남용에 대해 부작용을 경고했다. 학회는 지난 10월 23일 성명서를 내고 “GLP-1 같은 인크레틴 기반의 항비만약물은 사용하는 동안 반드시 의료진의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며 “미용 등의 목적으로 사용 시에는 부작용을 경험해 의료기관에 입원하거나 사망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처방 권고 대상이 아닌 이들이 단순히 살을 빼기 위해 손쉽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당부다.

위고비 투약을 중단하면 식욕이 과거 상태로 돌아가 ‘요요현상’이 생길 수 있다. 임상 결과, 투여를 중단한 뒤 30%가량이 요요현상을 경험했다. 또 여러 연구를 통해 체중 감량 시 근육량 감소도 발생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제약·바이오 업계에 기회로 작용한다. 업계 관계자는 “한번 주사를 맞기 시작하면 끊기 어려워질 수 있어 시장의 잠재력이 크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다 대부분 국가가 비만약은 보험을 적용하지 않아 성장성도 높다”며 “근 손실을 줄이고 체중 감소 기간을 오래 유지하는 등 ‘체중 감소의 질’을 높이기 위한 비만 치료제의 각축전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 논쟁 촉발도

글로벌 제약회사들의 ‘대박’에 국내 업체들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한미약품과 유한양행, 동아에스티 등은 비만 치료제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가장 빠른 속도를 내는 한미약품은 지난해 식약처로부터 비만 치료제로 개발 중인 ‘에페글레나타이드’ 임상 3상 계획을 승인받고, 오는 11월 미국비만학회에서 신약을 소개할 계획이다. 그 외 펩트론은 최근 일라이릴리와 장기 지속형 주사제 기술 개발을 위한 공동 연구 계약을 체결해 관심을 받고 있다. 위고비가 일주일에 한 번 투여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투약주기를 이보다 늘리는 것만으로도 제품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비만 치료제는 다양한 사회적 논쟁도 촉발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는 비만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 비만 인구가 10억명에 달하는데, 비만 관련 질병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함께 늘고 있다. 또 저소득 계층일수록 치료가 필요한 비만환자가 될 가능성이 큰데, 비싼 약값에 처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비만 치료제가 가장 많이 쓰인 곳은 비만율이 가장 낮은 부유층 거주지역으로 확인됐다. 정작 비만율이 높아 당뇨병 발병이 흔한 지역은 비만 치료제를 처방받은 비율이 미미했다. NYT는 “뚱뚱하면 가난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고, 비싼 약값에 정작 비만 치료제가 절실한 사람들은 약을 구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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