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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토)

연구성과 부족한 60대교수 정년연장에…젊은교수·학생 '부글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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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년연장 딜레마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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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곳곳에서 정년 연장 논의가 이뤄지고, 이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고령화가 진행된 대학가에서도 정년 연장 논의에 불이 붙었다.

국공립대학교를 중심으로 정년을 연장해 달라는 전임 교수들의 요구가 확산되는 가운데, 교수 사회 내에서도 세대별, 고용형태별로 갈등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25일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국내 4년제 대학교 소속 전임 교수들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22년 현재 전체 교수 중 60대 이상 전임 교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22.1%로 2018년 20.7%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교수들의 성과와 업적은 고령화에 반비례했다. 60대 이상 전임 교수들이 처리한 1인당 과제 수는 다른 연령대 교수들에 비해 낮았다. 이공계 분야의 경우 60대 이상 전임 교수의 1인당 과제 수는 1.34건이었다. 40대 2.26건, 50대 2.05건, 30대 이하 1.87건에 못 미쳤다.

인문사회분야도 마찬가지였다. 60대 이상의 1인당 과제 수는 0.65건이었으며 40대 0.95건, 50대 0.91건, 30대 이하 0.71건이었다.

이에 따라 교수들의 정년이 연장되면 대학의 연구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4년제 대학 40대 교수 A씨는 "공학 분야는 첨단 기술에서 앞서가는 사람이 결국 승자가 되다보니 누구나 기술을 기반으로 경쟁한다. 나이가 많은 교수님들은 기술 트렌드를 파악하는 감각 등 경쟁력이 평균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어 정년을 연장한다면 반발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환경이 악화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연구실, 대학원생 할당 등 한정된 자원을 두고 세대 간 경쟁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 대학 교수 B씨는 "한국은 미국과 달리 본인이 지도하는 학생이 아니면 연구를 시킬 수 없다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내 학생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정년 연장 이후에도 연구실과 시설을 차지하려는 교수님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임 교수를 목표로 하는 대학원생들과 비정규 교수들은 전임 교수 정년이 연장되면 자신들의 미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걱정이 크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서 이공계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조 모씨는 "안 그래도 없는 교수 자리가 더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충청권 4년제 사립대에 다니는 30대 대학원생 성 모씨는 "이공계열은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인문대나 상경계열은 교수님들이 50세를 넘어가면 학교에도 잘 안 나오고 55세를 넘어가면 학기 중에도 수업이 있는 날에만 나오는 분들이 많다"면서 "정년이 연장되면 이런 분들이 학교에 더 오래 남아 있다는 건데, 그런 분들 때문에 새로 학자가 되려는 사람들의 자리가 없어진다면 정말 화가 날 것 같다"고 말했다.

비정규교수 노조 관계자는 "종신교수 제도가 있는 미국에서도 종신교수가 되고 나면 연구나 강의에 소홀한 '좀비'가 된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한국에서는 아마 그런 현상이 더 심해질 걸로 예상한다"며 "학문적인 성과보다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많이 작용하는 학교에서는 대학원생이나 비정규 교수들이 들어갈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학문 연구는 연륜과 기술, 네트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에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인문학, 자연과학처럼 장기적인 안목에서 연구와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분야에서는 연령대가 높은 석학의 존재가 후학을 양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학과의 인연이 끊어지면 사실상 연구를 할 수 없는 환경에서는 계속 고용이 교수 본인과 학문 전체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여기에 근거한다.

전문가들은 대학 교수의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면서도 선별적이고 세분화된 정책적 접근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년 연장은 고용주의 지불 능력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며 "그러지 않으면 65세를 넘은 직원 한 명의 정년을 늘려 주기 위해 1년 미만 신입사원 여러 명을 뽑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년을 넘긴 직원의 직무 개수를 줄여서 임금을 줄이는 대신 젊은 직원들에게 줄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하는 등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의해 정교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교수의 경우 교육·연구·지도·봉사 네 가지 직무를 하면서 연봉 1억원을 받았다면 정년을 넘겨서는 조금 더 경쟁력 있는 연구에 집중하면서 연봉을 2000만~3000만원 정도 깎는 것으로 학교와 다시 계약을 맺는 식의 설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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