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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 (금)

[도시 발견] 인프라는 함부로 걷어내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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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현대사회는 도로와 철도, 상하수도와 전력망, 각종 공공시설 같은 인프라스트럭처(인프라)로 이루어져 있다.

이미 고도화된 도시에서 인프라는 마치 도시의 발전을 저해하는 흉물처럼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 선거 때만 되면 나오는 철도·도로·송전망 지중화, 변전소·군부대 이전 등의 공약(公約)은, 지난 총선 때 봤듯이 늘 공약(空約)으로 끝나고는 한다. 그리고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라는 민요처럼, 다음 선거를 앞두고 유령처럼 스멀스멀 되살아난다.

이런 희극이 몇 년마다 반복되는 배경에는 인프라에 대해 한국 민관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고, 단견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다.

우선 오해라고 하면 인프라는 도시의 발달을 저해하기 위해 그곳에 자리한 흉물이 아니라, 그 인프라가 먼저 있었기 때문에 도시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경인선·경부선·호남선 철도가 지나는 서울·부천·인천·대전·광주·부산 등의 도시에서는 철로 지중화를 주장하면서 철로 때문에 도시가 단절되었다는 논리가 펼쳐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애초에 철로와 철도역이 먼저 놓인 뒤에, 그 양옆으로 도시가 각각 형성된 것이 지난 백여 년간 한반도의 상황이었다.

배경이 이렇기 때문에 도시 단절을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주장하는 것이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해결책도 도출하기 어렵다.

그다음 인프라에 대한 한국 민관의 인식이 단견적이라고 하는 것은, 인프라를 눈엣가시 취급해서 도시에서 없애버린 결과, 그 뒤의 도시 개발에서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다.

부산의 원도심인 중구에는 1911년에 적벽돌로 지은 세관 건물이 있었다. 이 건물은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아 1973년에 부산시 지방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주변 지역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불과 6년 뒤인 1979년에 철거되었다. 부산시 측은 이 건물을 헐기 위해 본인들이 지정한 지정문화재까지 해제했다.

세관 건물을 헐어버린 부산시는, 얼마 전에 건물을 복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복원을 자랑스럽게 선언하기 전에 1979년에 어떤 경위로 건물을 헐었는지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행정 판단을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사과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세금을 들여 멀쩡한 건물을 문화재 지정까지 해제하고는 헐었다가, 몇십 년 뒤에 또 세금 들여서 복원하는 행정 실패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이 될 터다.

흉물 취급받는 철로도 함부로 걷어내면 안 된다.

충청북도 청주시는 시내를 달리던 충북선 철로를 시에서 한참 떨어진 곳으로 옮겨버렸다. 그 때문에 이제 와서 다시 철도를 시내에 놓으려 하지만 몇 조원의 예산이 들 것으로 추산되어 곤란을 겪고 있다. 그 당시 충북선 철로는 무심천 동쪽의 구도심을 통과한 뒤에는 강 건너 서쪽의 시 외곽을 관통했다. 그리고 그 외곽이 바로 오늘날 청주의 강남이라 불리는 지웰시티·SK하이닉스 한복판이다.

만약 이 선로를 흉물 취급해서 섣불리 걷어내는 대신 조금만 미래를 바라보고 남겨뒀다면, 청주 시민들은 시의 경계에 자리한 오송역 대신 시내 한복판에서 열차를 탈 수 있었을 것이다.

경전선의 광주광역시 시내 구간도 마찬가지다. 시내 구간을 달리는 철로가 흉물이라고 걷어내고는 그 주변을 아파트 단지로 채워버린 것이다.

현재 광주시 측에서 트램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 철로를 남겨두었다면 사업은 매우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토목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광주는 자가용 도시라는 교통 정책의 방향을 바꿀 기회를 놓쳤다.

부산·청주·광주와는 반대로, 인천~수원 간을 달리던 협궤 수인선은 폐선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수인분당선이라는 수도권 전철로 부활했고, 일부 구간은 지중화까지 이루었다.

정치가와 행정가의 시야가 갈수록 짧아지는 것은 전 세계 공통의 현상이다. 이럴 때일수록 시민·기업은 그들에게 부화뇌동하는 대신, 긴 안목을 갖고 정치·행정을 감시할 능력을 지녀야 한다.

매일경제

[김시덕 도시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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