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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 (금)

[논단]‘제로 콜라’만 배려했던 ‘윤-한’의 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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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파병에 한반도 정세 엄중한데

여권 세력은 분열로 공멸의 길

세 번째 ‘金여사 특검법’이 뇌관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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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면담 사진을 대통령실이 언론에 배포했다. 사각 테이블에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으니 남북회담 같은 분위기였다. 한 대표 옆에는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앉아 있었는데, ‘배석’이라고는 하지만 마치 과거 시절 ‘윤석열 검찰총장’이 두 검사를 불러다 앉혀놓고 지시하는 장면 같았다. 사진으로 윤 대통령의 표정을 보니 취조하는 분위기 같았다는 사람들도 있다. 두 팔을 길게 뻗쳐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는 윤 대통령의 모습, 준비해간 빨간색 파일을 앞에 놓고 있는 한 대표의 모습이 빚어낸 느낌은 그런 것이었다.

하필이면 이런 사진을 배포하는 대통령실은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진 것일까 궁금했다. 한 대표가 좋아한다는 ‘제로 콜라’가 나온 것이 유일한 배려라면 배려였다. 한 대표와의 면담 시간에 지각했던 윤 대통령은 81분간의 면담 직후 대통령실에 추경호 원내대표를 초청해 만찬을 했다고 한다. 한 대표가 끈질기게 ‘독대’를 요구하니 ‘마지못해서 하는 면담’이라는 윤 대통령의 마음을 알고도 남게 만든 광경들이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면담이 빈손으로 끝날 것임은 이미 그런 분위기를 통해 예고된 것이었다. 당초 한 대표는 윤 대통령과 면담 후 결과를 직접 브리핑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박정하 당 대표 비서실장이 설명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면담에서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박 실장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한 대표는 나빠지고 있는 민심과 여론의 상황, 이에 따른 과감한 변화와 쇄신 필요성”을 말했다고 한다. 특히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서는 대통령실 인적 쇄신, 대외활동 중단, 의혹 사항에 대한 설명 및 해소라는 3가지를 윤 대통령에게 건의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특별감찰관 임명 진행 필요성, 여ㆍ야ㆍ의ㆍ정 협의체의 조속한 출범 필요성을 말했다”고 박 실장은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는 대신 “헌정 유린을 막아내고 정부를 성공시키기 위해 당정이 하나 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는 선문답 같은 얘기만 했다. 윤 대통령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오자 대통령실은 다음 날 윤 대통령이 했던 말을 전했지만, 현안들에 대한 두 사람의 인식 차이가 그대로였음이 나타났다.

이날 면담으로 확인된 것은 윤 대통령이 김 여사 문제를 비롯한 정국의 현안들에 대해 기존의 인식을 바꿀 의사가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윤 대통령 부부는 야당이 제기하고 언론에 보도된 각종 의혹이 터무니없는 것들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악화한 여론을 수습하고 국정 쇄신에 나서는 모습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가능하다. 그러나 면담 다음 날 윤 대통령은 부산에 있는 범어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 누가 뭐라 하든 달라지지 않고 이대로 가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나라 안팎이 대단히 어수선하다.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한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파병은 그렇지 않아도 일촉즉발의 상황이던 한반도 정세에 어떤 파장을 낳을지 우려된다. 야권은 윤 대통령을 조기 퇴진시키는 노선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모습이다. 이런 마당에 집권 세력은 김 여사 문제로 내부 분열에 갇혀 있으니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단견에 혀를 차게 된다. 지금 여권 세력은 공멸의 길로 가고 있다. 집권 세력이 공멸하면 윤 대통령 부부의 앞길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야당이 세 번째로 발의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은 여권 세력 내부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우리 정치사를 돌아보면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들인데도 막상 그 자리에 오르면 제대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다. 그러니 우리 정치사의 악순환도 반복된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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