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에서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불길이 치솟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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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이 지난해 가자지구 전쟁 발발 후 11번째로 이스라엘을 찾아 휴전을 압박했으나 이번에도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군은 블링컨 장관이 방문 일정을 마치고 23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자 곧바로 레바논에 대한 공습을 확대했다. 가자지구 북부에 대한 포위 공격도 강화되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블링컨 장관이 떠난 후 개전 이후 레바논에 가장 광범위한 대피령을 발령하고 남부 도시 티레를 공습했다. 티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로마 유적지가 있는 고대 항구도시다. 이 공습으로 최소 16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도시에는 전쟁 전 약 12만5000명이 거주했으나, 이스라엘의 공격이 시작된 후 최근 몇 주간 많은 이들이 피란길에 오르면서 현재는 약 1만5000여명만 남아 있다.
BBC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로마 유적지에서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인구 밀집지역에 공습으로 인한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고 보도했다. 티레 시장은 로마 유적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밝혔다.
레바논 국영 NNA통신은 티레 외에도 이스라엘군이 베이루트 남부 지역에 총 17차례 공습을 단행해 건물 여섯 채가 무너졌다고 밝혔다.
베이루트 남쪽 고베이리에 있는 친이란 성향의 레바논 방송사 알마야딘도 폭격 피해를 입었다. AP통신은 공습 전 이스라엘군이 대피 경고를 발령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전날에는 고베이리 일대에서 열린 헤즈볼라의 기자회견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중단돼 취재진이 황급히 대피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스라엘군은 24일에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향해 재차 공격을 단행했다. 시리아 국방부는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이 다마스쿠스 중심부 카프르 소자에 있는 군사시설을 폭격해 1명이 숨지고 7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21일에도 다마스쿠스를 표적 공습해 이란에서 자금을 조달해온 헤즈볼라 간부를 제거한 바 있다.
헤즈볼라 역시 이스라엘을 겨냥해 23일 로켓과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공격으로 텔아비브에 공습경보가 울렸으며, 블링컨 장관이 숙박한 호텔 상공에선 이스라엘의 방공망에 걸린 미사일이 폭발한 연기가 관측됐다. 이스라엘군은 레바논에서 쏜 발사체 4개 가운데 2개를 요격했고 2개는 인적이 드문 곳에 떨어져 인명 피해가 없었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이 이스라엘군의 포위 공격을 받고 있는 가자지구 북부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거듭 압박했으나 북부 상황 역시 날로 악화되고 있다. 이스라엘군 탱크가 북부 포위 공격을 강화하며 세계보건기구(WHO)가 추진해온 소아마비 2차 백신 접종이 중단됐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23일 하루 새 가자지구 전역에서 최소 42명이 사망했으며, 이 중 37명이 북부에서 숨졌다. 이스라엘군이 이달 초 북부 포위 공격을 시작한 후 이 일대에서 최소 650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은 지난해 이스라엘 공격을 주도했던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수장 야히야 신와르의 죽음이 휴전협상의 새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하며 이스라엘에 재차 휴전을 압박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블링컨 장관은 이스라엘을 떠나기 전 공항에서 “이스라엘은 가자에서 전략적 목표 대부분을 달성했다”면서 “아직 해야 할 일이 두 가지 남았는데, 인질을 데려오는 것과 전쟁을 끝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방문에서 블링컨 장관은 이스라엘 측과 ‘단기 휴전’이라는 새 선택지 역시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자지구에 억류된 인질 100여명 가운데 일부를 석방하는 대가로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휴전하는 안으로, 이는 미국 등 중재국과 전쟁 당사자들이 지난 수개월간 논의해온 이른바 ‘3단계 휴전안’과는 큰 차이가 있다.
AP통신은 이스라엘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이스라엘 안보 내각이 ‘12일간 휴전’과 ‘인질 6명 석방’을 골자로 한 이집트 제안을 논의했으며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NYT는 미국 관리들이 새 단기 휴전안으로 신와르 사망 후 하마스가 휴전 협상에 더 열려 있는지 시험해보고자 한다고 보도했다. 그간 미국 정부는 신와르를 협상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단기 휴전안 역시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마스는 신와르 사망 후 이스라엘이 종전을 약속하지 않는 한 인질 석방은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고, 그간 휴전협상을 번번이 무산시켜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미국 대선을 불과 2주 앞두고 미국의 휴전 압박을 수용할 가능성도 낮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의 정치학자 게일 탈시르는 CNN에 “네타냐후 총리 연정은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으며, 하마스와 헤즈볼라 수장 모두를 제거한 후 더 큰 ‘그림’이 되는 승리가 없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며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때까지 시간을 끌다가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이 되면 사우디와 방위 동맹을 성사시켜 자신의 국내 입지를 강화하고자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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