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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목)

“인구 위기 대신 ‘저출생 현상’ 이라고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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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15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무엇이 재생산 구조의 위기를 낳았는가’를 주제로 기조발제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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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위기’, ‘저출산 위기’라고 부르지 말고 저출산 현상이라고 부르자. 실제는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다.”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는 24일 오전 제15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첫 번째 기조 발제자로 나서 ‘무엇이 재생산 구조의 위기를 낳았는가’를 주제로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하 출생률, TFR)이 1명대로 급격히 떨어진 뒤 1990년(1.57)부터 최근까지, 지난 30여년 한국의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에서 위기의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봤다.



그의 설명 틀의 핵심은 한국의 경제 발전 패러다임이 박정희 정부 이후에도 꾸준히 ‘초남성적 국가 발전주의’(Hypermasculine State Developmentalism)에 갇혀 있다는 데 있다. 이는 국가 지도자를 가부장, 재벌 중심 기업을 ‘효자’(아들), 시민사회를 헌신적인 아내, 노동자를 순종적인 딸 등의 가족 역할로 제한하는 인식틀이다. 여기에 더해 1990년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이후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약화되고 노동의 불안정성이 강화되면서 민주주의 발전도 불안정하게 이뤄졌고, 저출생 정책에서는 젠더·계급 관점이 누락됐다고 본다.



김 교수는 그 결과 2030 청년층, 특히 여성이 출산과 결혼으로부터 ‘도망’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고 짚었다. 국가는 여성의 출산 능력과 의지에 구애하지만, 정치 리더들이 여성 혐오를 승인해 폭력을 부추기는 상황이 ‘출산·결혼으로부터의 도피’를 촉진시켰다고 본다. 그는 “특정 인구군을 모욕하고, 특정 인구군이 겪는 폭력 경험을 모른 척하고, 많은 남성이 가진 불안정 고용에서의 삶의 위기를 모른 척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저출생 해법도 “심화된 민주주의”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누구나 노동자, 돌봄자, 참여적 시민으로서의 다중적 위치를 가진 동등한 사회적 존재로 인정받는, 민주주의 사회의 발전이 필수라는 것이다. 그는 “도구적 목적으로 여성, 노동자, 국민, 이주자를 바라보지 말고 모든 존재가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참여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강조했다. 또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 대신 생계협력자-돌봄공유자 모델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제도적 해법도 제시했다. 국가와 기업이 ‘초남성적 국가 발전주의’에서 벗어나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춰주는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일터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모든 일터에 성평등·돌봄을 존중하는 정책, 예컨대 ‘가족돌봄 차별금지’ 개념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임신한 여성, 일하는 부모 노동자, 장애인 가족, 배우자·부모를 돌보는 모든 노동자에 대한 차별(편견 조장, 승진 거부, 휴가 내는 직원 괴롭힘 등)을 금지하는 가족차별금지법을 도입해 시행 중이라고 한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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