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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목)

[사설] ‘땜질식 처방’만 이어지는 에너지 가격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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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오른쪽)과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이 2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전기요금 조정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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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더미 한전, 산업용 전기 요금만 9.7% 인상





유류세 인하 연말까지…3년간 세수 13조 줄어



한국전력과 정부가 어제 전기요금 인상안을 발표했다. 전체 전기 사용량의 절반 이상(53.2%)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오늘부터 평균 9.7%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와 철강 등 전기를 많이 쓰는 대기업은 10.2%, 중소기업은 5.2% 인상된다. 산업용에 국한한 이번 인상만으로도 전체 전기요금을 5%가량 올리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는 게 한전의 예상이다. 업계는 연간 단위로 수익이 약 4조7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전의 재무 상황은 심각하다. 원가보다 싼 가격에 전기를 팔면서 적자가 쌓여 갔기 때문이다. 2022년 이후 여섯 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을 올리고 자구책에 나섰지만, 202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누적적자는 41조원에 이른다. 지난 6월 말 기준 한전의 총부채는 203조원에 달한다. 지난해에만 이자로 4조4500억원을 썼다. 매일 122억원을 이자로 낸 셈이다. 이처럼 심각한 한전의 재무 위기를 감안하면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산업용 전기요금만 콕 집어 올리는 땜질식 처방이다. 주택용 전기요금과 상점 등에서 쓰는 일반용 전기요금은 지난해 11월에 이어 이번 인상에서도 제외됐다. 우리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다섯 번째로 낮고, 일본과 프랑스 주택용 전기요금은 한국의 2배, 독일은 3배 수준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가계 부담과 생활물가 안정 명목으로 한전 고객의 98.3%를 요금 인상에서 배제한 것은 포퓰리즘일 뿐이다.

올해 말까지 연장된 유류세 인하 조치도 에너지 가격 포퓰리즘의 또 다른 예다. 인하 폭을 줄여왔지만 유류세 인하 조치는 2021년 11월 도입 이후 열두 번이나 연장됐다. 국제 유가는 변동성이 큰 탓에 유류세 인하는 가격 급등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고 물가 안정에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물가가 안정을 찾아가는 상황에서 이런 선심성 정책을 이어가는 건 세수 펑크를 더 키울 수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안도걸 의원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유류세 인하로 인한 세수 감소액은 13조원에 이른다.

주택용 전기요금 동결과 유류세 인하 연장은 당장은 달콤하다. 하지만 이런 달콤함에 취하면 더 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전력 수요가 폭등하는 상황에서 한전의 적자가 커지면 송배전망 등 전력 인프라 구축을 위한 투자가 위축된다. 부실한 전력 인프라는 산업 경쟁력 훼손으로 이어진다. 유류세 인하로 인한 세수 감소는 이미 비어 가는 나라 곳간을 더 휑하게 할 수 있다. 조금 고통스럽더라도 현실적인 전기요금 체계를 마련하고, 유류세도 정상화해야 한다. 피하고 미루면 나중에는 손댈 수 없을 만큼 곪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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