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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수)

세계 경제지도서 350년간 사라질 가자지구 : 전쟁의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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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연 기자]

유엔·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들이 전쟁의 값비싼 경제적 대가를 적시해 경고하고 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두개의 전쟁은 확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벌써 세번째 전쟁의 경제적 피해 규모를 산출한 곳들도 있다. 소멸의 위기에 처한 가자지구를 통해 지정학적 위기의 파급력을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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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22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 도시인 베이트 라히아의 난민 거주지인 학교 건물을 공습한 모습.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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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무역개발기구(UNCTAD)는 22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지속해서 군사작전을 펼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경제가 사실상 와해했고, 전쟁 이전 상태로 회복하려면 약 350년이 걸릴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 러시아 매체 아스트라는 22일 텔레그램 채널에 '북한군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러시아 제127 자동차소총사단 예하 부대 기지에 도착한 장면'이라는 영상을 올렸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18일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확인했다.

# 국제통화기금(IMF)은 22일 발표한 '금융안정성 보고서'에서 "지금까지 측정해온 금융 변동성이 최근 지정학적 위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추후 금융 쇼크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서로 다른 현안을 관통하는 주제는 '지정학적 위기'다. 특히 "사실상 와해한 가자지구가 이전 상태로 회복하려면 350여년이 걸린다"는 유엔무역개발기구의 분석은 함의가 크다. 전례前例를 보면 그 함의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로마가 기원전 146년 멸망시켰던 당시 북아프리카 최대 도시 '카르타고'는 그로부터 24년 후에 다시 개발을 시작했고, 78년 후에는 로마의 주요 식민 도시 중 하나가 됐다. 만약 UNCTAD의 예측대로 가자지구 경제가 회복하는 데 350년이 걸린다면, 가자는 멸망 도시의 대명사였던 카르타고를 대체하게 된다. 사실상 세계 경제지도에서 사라진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풀어보자.

■ 가자지구의 소멸=UNCTAD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국민을 점령하는 경제적 비용'이라는 보고서에서 "가자지구 국내총생산(GDP)은 4분기에만 전분기 대비 81% 감소해 지난 1년간 22% 줄었다"며 "올 6월 기준 가자 경제 규모는 2022년의 6분의 1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UNCTAD는 가자지구 경제 회복에 걸리는 시간으로 350년을 적시했지만, 그마저도 '당장 휴전한다면'이라는 조건이 붙어있다. 팔레스타인의 또 다른 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경제도 사실상 붕괴했다. 보고서는 "서안지구 구시가지에 위치한 기업들 80%가 이미 운영을 중단했다"며 "전쟁 전 10%대였던 서안지구 실업률은 올해 35%를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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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 7일 무장단체 하마스의 침공으로 자국민 1200여명이 사망하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지난 7월 말 기준 가자지구 사망자가 4만1615명, 부상자가 9만6359명이라고 발표했다.

그 결과 1㎦당 6000명 이상이 거주해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 중 하나였던 가자지구는 230만명 인구 중 190만여명이 난민이 됐다. 난민 중 상당수는 이스라엘의 봉쇄로 가자지구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2008년 이후 가자지구에서 7차례 이상 대규모 군사작전을 펼쳤다.

■ 과잉 반격의 결과=무장단체 하마스의 지난해 10월 이스라엘 공격이 국제법상 불법이었다고 해서, 이스라엘의 위법행위를 눈감아 줄 수는 없다. 이스라엘의 대응은 대부분 국제법을 어겼고, 반격의 비례성조차 무시해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까지 팔레스타인의 사망자는 가자에서만 이스라엘 사망자의 40배를 넘겼다. 유엔 서아시아경제사회위원회(ESCWA)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가자지구 전체 건물의 절반인 36만채가 전부 파괴되거나 손상됐다. 이중 학교가 305개, 병원이 25개, 의료시설이 649개, 모스크가 290개다.

그런데 국제인도법(IHL) 9장은 민간인 공격을 금지하고 있다. 제네바협정 1조는 체결국이 무기를 전쟁 중인 나라에 이전할 때 국제법을 준수할지를 고려하라고 규정했다. 국제법위원회(ILC)는 '국가 책임에 관한 규칙' 52조에 "피해를 입은 것에 상응하는 대응을 할 것"이라는 비례성 요건을 적시했다. 암살, 특정 단체를 말살하려는 것 등도 모두 국제법 위반이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지난 7월 "이스라엘이 1968년 이후 가자지구, 서안지구,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팔레스타인 점령을 즉각 중단하고, 주민들에게 완전한 배상을 하라"고 판결했다. 이스라엘은 법원 명령을 따를 생각이 없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판결 직후 "법원은 '거짓말의 결정'을 내렸다"고 비난했다.

■ IMF의 금융 쇼크 경고=문제는 이런 지정학적 위기가 세계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IMF는 22일 발표한 세계 금융 안전성 보고서에서 "지정학적 위기의 차원이 달라지고 있고, 이는 금융시장에 강한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정학적 위기가 유가 상승, 인플레이션 재발생, 난민 문제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보고서는 "군사적 갈등이 계속되면서 지정학적인 불확실성이 새로 선출된 각국 정부의 불확실한 미래 정책과 만나 금융 쇼크를 증폭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지정학적 위기는 과거보다 커졌고, 이런 변동성이 IMF 등이 표준화한 측정치를 넘어섰다는 얘기다. 그래서 "자산 가격의 폭락이 발생해 시장이 과잉 매도 등 쇼크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게 보고서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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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육군이 지난 7월 열린 연례 군사훈련 ‘한광(Han Kuang)’에서 155㎜ 포를 발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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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이 안 될 수준의 불확실성 증가와 함께 전쟁에 참여한 국가들이 세계 경제 시스템에서 이탈하는 탈脫 세계화 현상도 근본적 문제 중 하나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2022년 IMF 블로그에 게재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선진국 재정·통화정책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는 보고서에서 "러시아 등의 단기적 탈세계화는 세계 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줄 것"이라며 "탈세계화 현상은 미국 GDP의 2~3%, 중국 GDP의 3~4%를 증발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 세번째 전쟁의 비용=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등 두개의 전쟁이 확전 양상을 보이면서, 이제 세번째 전쟁의 비용을 계산하는 곳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독일 킬 세계경제연구소는 지난 2월 '전쟁의 가격'이라는 보고서에서 "전쟁의 경제적 비용은 참전국이 가장 많이 부담하겠지만, 이웃 나라들의 성장을 수년간 둔화시키는 방식으로 전가된다"고 주장했다. 역사적인 평균을 보면 참전국 경제 산출량은 5년간 30% 축소됐고, 인플레이션은 15% 증가했다.

전쟁 비용은 지속 기간과 전투의 강도에 따라서 달라진다. 킬 연구소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국가 생산량은 2026년까지 1200억 달러 줄어들고, 국가의 자본도 9500억 달러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가 발전한 나라일수록 피해도 심하다. 킬 연구소는 대만 영토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5년간 세계 경제의 손실이 2조2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란에서 전쟁이 발생하면 세계 경제는 1조7000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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