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원주민 의원, 찰스에 “당신은 내 왕이 아니다” 외쳐

호주 원주민 출신인 리디아 소프 호주 상원의원이 21일(현지시간) 호주 캔버라 의회에서 영국 국왕 찰스 3세에 항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국왕 찰스 3세의 호주 방문을 계기로 호주에서 군주제를 둘러싼 반감이 표출됐다.

21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이날 호주 의회에서 찰스 3세가 연설을 마친 뒤 한 상원의원이 “당신은 내 왕이 아니다”라고 소리치는 사태가 발생했다. 소리친 이는 호주 원주민 출신 리디아 소프 의원으로, 그는 “우리 땅을 돌려달라. 당신들이 훔친 것도 돌려달라”고 외치다 경호원들에게 제지됐다. 그는 영국 국가가 나올 때도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찰스 3세는 이날 연설에서 “내 인생 내내 호주 원주민은 자신의 이야기와 문화를 아낌없이 공유해줬다. 그러한 전통적인 지혜가 나의 경험을 형성하고 강화했다”고 언급했다. 원주민을 인정하는 발언이었으나 반감을 누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호주 녹색당은 성명을 내 “국왕 방문은 일부에겐 중대한 행사지만 많은 원주민에게는 현재진행형인 식민지 트라우마를 상기시킨다”고 지적했다. 원주민 출신 도린다 콕스 상원의원은 찰스 3세를 향해 “원주민을 위한 정의, 진실 규명 및 치유를 명확히 지지하고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호주 원주민 사이에서 군주제 반대 목소리는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호주 원주민들은 자신들은 주권을 양도한 적이 없고 영국 왕실과의 조약에도 참여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230여년 전 영국이 호주에 정착을 시작한 이후 1930년대까지 학살을 당했으며 여전히 호주에서 인종차별과 제도적 차별을 겪고 있다.

이날 소리친 소프 의원은 2022년 상원의원 취임 선서를 할 때도 당시 영국 국왕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를 비판한 바 있다. 영국 국왕을 국가 원수로 삼는 호주 헌법에 따라 새로 당선된 의원은 영국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선서를 해야 한다. 그러나 소프 의원은 한 손 주먹을 위로 치켜든 채 “나 리디아 소프는 ‘식민지배자’ 엘리자베스 2세에게 진정한 충성을 다할 것을 엄숙히 진심으로 맹세한다”고 했다. 이후 다시 제대로 선서를 해야 했으나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주권은 절대로 양도되지 않는다”고 적었다.

호주는 1999년 공화제 전환 개헌을 두고 국민투표를 했으나 반대 54.9%로 부결됐다. 지난해엔 호주 원주민을 호주의 최초 국민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대변할 헌법 기구를 세우는 내용의 개헌안이 반대 약 60%로 부결됐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창간 기념 전시 ‘쓰레기 오비추어리’에 초대합니다!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