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대개혁 시동]
금융계 '기금형 퇴직연금 반대' 공동의견서 제출
382조 퇴직연금 시장 뺏길까 우려 확대
"수령 시점·운용방식 다른데, 수익률 비교 무리"
국민연금 '공룡화'우려, 연금 사회주의 지적도
2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최근 은행연합회·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금융투자협회는 정부부처에 국민연금의 퇴직연금 사업자 참여 반대 입장을 담은 공동 의견서를 냈다. 또한 국회 입법조사처를 비롯해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등을 만나 적극적으로 퇴직연금 기금화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각 업권 협회가 뜻을 모아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에 대한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은행, 보험, 증권사 모두 같은 입장이기 때문이 향후에도 입법·정책 추진상황을 살펴보고 공동 대응할 예정”이라며 “금융업계 뿐만 아니라 퇴직연금과 관련이 있는 기업과 근로자 전반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말 기준 전체 금융업권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382조 4000억원이다. 업권별로는 은행이 198조원 규모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뒤를 증권사를 포함한 금융투자업계가 86조 7000억원, 생명보험 78조 4000억원, 손해보험 14조 8000억원 순이다.
현재 금융권에서는 압도적인 수탁고를 보유한 은행뿐만 아니라 증권사와 보험사 등 업계 전반이 기금화를 반대하고 있다. 제도가 바뀌면 현재 쌓아놓은 수탁금을 통합기금 운용기구에 넘긴 후 입찰 등을 통해 이를 다시 수탁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은 “공적 영역 섹터가 프라이빗(사적) 쪽으로 넘어오는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반대한다”며 “국민연금의 모수개혁과 수익률 개선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 제일 우선이 돼야 하는데 그것을 뒤로 하고 퇴직연금 시장까지 참여하겠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됐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금융업계는 퇴직연금을 기금화한다고 해서 수익률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산술적으로는 국민연금의 최근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5.7%. 같은 기간 퇴직연금은 2.1%에 불과하지만, 운용 방식 등을 고려할 때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고위관계자는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은 수령방식이나 장단기 운용방식이 모두 다르다. 국민연금은 법정 연령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다 보니 초장기 투자가 가능하지만 퇴직연금의 투자 기간 등은 모두 근로자 개인이 정한다”면서 “완전히 다른 제도라 할 수 있는데, 수익률을 나란히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기금화가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 가입자의 투자 성향이 모두 다르고, 원하는 포트폴리오도 천차만별”이라며 “단순하게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기금형을 도입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은행, 증권, 보험사 등 민간 운용사마다 포트폴리오 구성이 달라 원금보장형-비보장형 등의 선택지가 넓은데, 기금형이 도입되면 오히려 개개인의 자기주도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정된 사항은 아니나 한편에서 국민연금이 퇴직연금의 운용기구로 거론되는 것을 두고 ‘공룡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대다수 대형상장사의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이 기업 의사결정을 좌우할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최근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을 두고도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게 현실이다.
한 자산운용사 사장은 “국민연금이 퇴직연금 시장까지 장악하면 운용 규모가 1500조원에 이르게 된다”며 “사실상 국내 주식시장이 국민연금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자산운용업계 관계자 역시 “국민연금이 기업 의사 결정에 의결권을 행사하면 연금 사회주의 문제가, 관여하지 않아도 방치 문제가 거론되는데 이런 문제들은 전혀 논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퇴직연금까지 국민연금 수중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사회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의도 증권가 전경[연합뉴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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