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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황금사자상 vs 황금종려상, 국내 영화관서 ‘아카데미 전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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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영화 ‘룸 넥스트 도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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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세계 영화계의 양대 승자라고 할 만한 베네치아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과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잇따라 개봉한다. 황금사자상의 ‘룸 넥스트 도어’가 23일, 황금종려상의 ‘아노라’가 내달 6일 관객들과 만난다. 두 작품은 내년 3월 열리는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연기상 등 주요 부문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정돼 있다.



스페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처음으로 영어로 찍은 ‘룸 넥스트 도어’의 두 주연배우는 틸다 스윈턴과 줄리앤 무어다. 아카데미상 수상 이력만으로 압도적인 연기력을 다 표현할 수 없는 두 배우가 한 장면에 들어간다는 것만으로도 만사 제치고 예매 클릭을 할 만하다. 여기에 베네치아영화제 사상 가장 긴 18분간의 기립박수를 끌어냈다는, 노장의 격조 있는 연출력이 더해졌다. 소재는 요즘 전세계적으로 뜨거운 화두 중 하나인 안락사다. 소재와 주제, 연출과 연기, 어느 한구석에서도 바느질 자국이 드러나지 않는 빼어난 완성도를 보여준다.



작가로 성공한 잉그리드(줄리앤 무어)는 사인회를 하기 위해 뉴욕에 왔다가 오래 전 잡지사에서 일할 무렵 가까운 동료였던 마사(틸다 스윈턴)가 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찾아간다. 미혼모로 낳았던 딸과도 멀어진 마사는 가망 없는 치료를 중단하고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려는 여정에 친구가 함께해주기를 부탁한다.



옆방을 의미하는 ‘룸 넥스트 도어’는 마사가 병원을 떠나 한달 동안 지낼 숲속 아름다운 집에서 잉그리드가 있어줬으면 하는 자리다. 안락사가 불법인 지역에서 친구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마사가 궁리한 방법이다. 고민 끝에 친구의 마지막 여행에 동행하게 된 잉그리드는 아침마다 친구 방 문을 보며 조마조마해한다.



마사는 아름다운 숲과 눈부신 햇살을 누리며 삶을 정리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을 결정한다. 잉그리드는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음속을 짓누르던 불안과 두려움의 안갯속에서 서서히 빠져나온다. 두 배우의 경이로운 연기력과 거장의 연출력에 힘입어, 이 영화의 무거운 터널을 나오는 순간 관객에게 주어지는 건 죽음 앞장에 놓인 삶에 대한 벅찬 사랑이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베네치아영화제 수상 소감에서 “이 세상에 깨끗하고 품위 있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기본적 권리라고 믿는다. 이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라고 말했다.



한겨레

영화 ‘아노라’.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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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감독 숀 베이커의 여덟번째 장편 연출작 ‘아노라’는 현실판 ‘티파니에서 아침을’ 또는 ‘귀여운 여인’이라 불릴 만하다. 뉴욕에서 스트리퍼로 일하는 아노라(마이키 매디슨)가 철부지 러시아 재벌 2세를 만나 인생 대반전을 노리는 이야기다. 아노라는 이제 갓 스무살 넘은 이반(마르크 예이델시테인)에게 서비스를 하다 청혼을 받고 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러시아의 이반 부모가 노발대발하자 이반을 뒤치다꺼리하던 3인방은 결혼을 무효로 돌리기 위해 아노라를 끌고 저 혼자 내뺀 이반을 잡으러 다닌다. 이반을 설득해 결혼을 유지하려는 아노라 역시 다급한 건 마찬가지다.



‘아노라’는 아이폰으로 찍은 감독의 전작 ‘탠저린’(2018)처럼 누군가를 찾기 위해 대도시의 지친 밤거리를 날이 새도록 훑고 다니는 이야기를 뼈대로 한다. 집사이면서 조폭 같기도 한 3인방은 아노라를 협박하면서도 어딘가 모자라 보인다. 기괴한 위계의 피라미드에서 물리적으로는 가장 약한 아노라이지만 ‘모질이’들의 쫓고 쫓기는 대소동극에서 그나마 제정신이 붙어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베이커 감독은 장편 연출작이 주목받기 시작한 때부터 늘 성 노동자를 스크린 중심에 올려왔다. 그들은 주로 삶의 구석에 밀려나 있고, 때론 어리석은 판단도 하지만, 카메라는 섣불리 판단하거나 연민하지 않는다. “이 상을 과거와 현재, 미래의 성 노동자에게 바친다”는 베이커의 칸영화제 수상 소감처럼, 그의 영화들은 이들에게 씌워진 편견의 필터를 벗겨내는 데 역점을 둔다. 그리고 그런 편견으로 포장한 디즈니식 해피엔딩이나 과잉된 비극 역시 피해간다. 냉철하면서도 차갑지 않은 카메라의 시선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존재하는 캐릭터들에 ‘삶’을 불어넣는다. ‘아노라’의 현실적이면서도 예기치 못한 결말이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드는 이유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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