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이후 정신적 충격이 컸던 유씨는 지난해 진행된 1심 재판에 나올 수 없었다. 하지만 피고인의 양형조사를 위해선 그의 진술이 필요했고 검찰은 재판부 제안에 따라 유씨를 다시 증인으로 불렀다. 유씨도 ‘딸과 손녀를 위해 한 번은 목소리를 내야겠다’며 이번엔 증인 출석을 결심했다. 무엇보다 판결로 남게 되는 딸에 대한 마지막 기록을 ‘정확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딸이 범행 동기를 제공했다는 식의 피고인 주장을 배척하고, ‘마땅한’ 혐의로 책임을 묻고 싶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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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석에 선 유씨에게 재판부는 먼저 그의 안부를 물었다. “생활은 어떻게 하고 계시는가요?”, “손 다치신 데는 괜찮으신가요?” ….
그도 그럴 것이 은총씨, 손녀와 함께 셋이 살던 유씨는 사건 이후 홀로 지내고 있다. 손녀는 은총씨의 전 남편이 양육하게 됐다. 생계를 책임지던 은총씨가 사라지면서 유씨는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고 있다. 본격적으로 진행된 증인신문에서 유씨는 차분하고 평온한 목소리로 그날 있던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진술했다. 출석 전 스스로 다짐했던 대로 눈물은 끝까지 참아냈다.
유씨는 이날 증언 뒤 재판부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은총씨의 사촌언니가 제출한 탄원서에 유씨의 소회를 함께 적어낸 것이다. 유씨는 “사건 이후 (재판부가) 유일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어봐 주셨다. 재판부가 딸의 사건을 진심으로 바라봐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유씨는 이제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 대신 ‘칼을 잡았던 손을 놓아 어린 손주를 살릴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
유씨의 증언은 2심 재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재판에서는 6살 손녀가 범행을 목격했는지가 쟁점이었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어린 자녀가 지켜보는 중에 범행을 저질렀다면 형을 가중할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1심 법원은 이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지만 2심은 유씨의 진술 등을 바탕으로 이를 인정할 수 있었다. 피고인의 형량은 징역 25년에서 징역 30년으로 늘었다.
1심부터 모든 재판을 방청해온 은총씨의 사촌언니는 “형량은 결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도 “남은 아이를 위해서 판결문을 바르게 남겨 놔야겠다는 목표를 이뤄 작은어머니(유씨)가 큰 위로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어디서도 사건정보를 얻을 수 없는 피해자에게 판결문은 전부나 마찬가지”라면서 “다른 사건에서도 피해자 처지에 공감을 해주는 재판부가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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