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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월)

[횡설수설/조종엽]“수업 중 컴퓨터 쓸 수 있게 하니 수업시간 40% 딴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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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학생들에게 수업 중 컴퓨터를 쓸 수 있도록 허용했더니 수업 시간의 최대 40%까지 딴짓을 하더라.” 스웨덴 왕립 카롤린스카 의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다양한 기관의 통계와 연구 결과를 종합 분석해 내놓은 ‘전국 학교 디지털화 전략 의견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노트북을 켠 학생은 켜지 않은 학생보다 수업 내용 질문에 대한 정답률도 30%가 낮았다. 디지털 도구가 주의력을 산만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나라는 수학과 독해 부문에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성적이 낮은 경향도 발견됐다.

▷의견서의 분석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컴퓨터로 필기하는 학생들은 종이와 펜을 사용하는 학생들보다 성적이 더 나빴다. 또 학생들에게 디지털 기기로 필요한 지식을 검색하도록 하면 깊이 있는 지식을 얻기보다 대강의 얕은 지식만 얻게 될 소지가 크다고 한다. 학생들이 콘텐츠를 종이가 아니라 화면으로 읽으면 기억을 잘 하지 못하는 현상이 관찰되기도 했다. 흥미 위주로 대강 줄거리만 파악하면 되는 웹 소설과 달리,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하면서 읽어야 하는 한강 작가의 작품이 디지털 기기론 눈에 잘 안 들어오는 것이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한데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가 내년 초등학교 3·4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의 수학 영어 정보 수업에 전면 도입될 예정이다. 교육부는 이후 단계적으로 이를 다른 학년과 과목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AI 교과서는 콘텐츠가 다양하고 기초, 심화 등 학생별 맞춤형 학습을 지원한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 교육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불안하다. 집에서도 쇼트폼 콘텐츠 등 스마트폰에 빠진 아이가 학교 수업마저 디지털 기기로 받으면 의존이 더 심각해질까 봐서다. 디지털 기기의 역사가 짧아 뇌와 어린이 청소년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우리는 아직 정확히 모른다. 세계적으로도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해 쓰는 곳은 독일과 미국의 일부 주(州) 등 소수다. 교실의 디지털 기기 사용을 의무화했던 핀란드는 유턴해 다시 종이책을 사용하고 있다. 문해력 저하 등 부작용이 있다는 평가 때문이다.

▷도입이 불과 4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는데, 아직도 AI 교과서 완성본이 공개되지 않은 점도 걱정을 키운다. 실물이 없으니 어떻게 가르칠지 아직도 감이 안 잡힌다고 말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구독료 등으로 2028년까지 4년 동안 2조∼7조 원의 적지 않은 예산이 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교육부는 약 3년 동안은 기존의 서책형 교과서와 병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부작용이 어른거리고 준비도 부족해 보이는 정책을 쫓기듯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조종엽 논설위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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