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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토)

“이러다 트럼프에 진다”...심상찮은 해리스 위기징후 [★★글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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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우군 ‘노조’의 지지 기피
‘女후보 불리’ AP·시카고대 조사
‘해리스모멘텀’ 상실 생생한 신호

트럼프는 ‘머스크·네타냐후’ 효과
‘10월 서프라이즈’에 지지율 상승


매일경제

대형 선거의 길목에서 유권자 표심을 흔드는 ‘바람’에 대한 얘기다.

2012년 정치부 시절 기자는 새누리당을 출입하며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지켜봤다.

또 국제부 소속으로 활동하던 2020년에는 현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항마인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 간 대선판을 커버했다.

양국 대통령 선거를 지켜보며 확인할 수 있었던 하나의 공통점은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 승패와 연관된 거대한 이벤트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를 정치권에서는 ‘바람’이라고 얘기한다.

2012년 한국 대선에서는 박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 여론조사에서 뒤지다가 선거 막판 강원도 유세장 이동 과정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박 후보의 최측근 인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자신이 아끼던 보좌관이 사망하자 ‘얼음공주’라는 별명의 박 후보는 영결식에서 눈물을 훔쳤고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선거 전 여론조사 결과와 다르게 대선일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박근혜 당선 유력(50.1% vs 48.9%)이라는 자막이 떴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최종 집계(51.55% vs 48.02%)에서도 이변은 없었다.

정치인 박근혜의 대선 승리에서 당시의 교통사고는 동정표를 이끌며 승패에 영향을 주는 바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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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대선일을 일주일 앞두고 자신의 최측근 인사 영결식에서 눈물을 훔치는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공교롭게도 사고가 발생한 박 후보 유세 차랑 2대 뒤로 기자가 탑승한 차량이 따라가고 있었다. 당시 도로 위 아비규환 현장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2020년 미국 대선 해에서 바이든 후보의 승리를 견인한 바람은 코로나19 팬데믹과 이로 인한 급격한 경기침체, 그리고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라는 토네이도급 이벤트였다.

심지어 선거 한 달을 앞두고 코로나19에 감염돼 트럼프 대통령이 사흘간 입원하는 잔잔한 바람도 있었다. 이로 인해 트럼프 캠프는 막판 유세 차질을 빚었다.

미국 언론들은 이처럼 대선일 직전 선거의 판도를 바꾸는 거대한 바람을 ‘10월의 서프라이즈’로 부른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가 당선된 2008년에는 선거를 한 달 앞두고 ‘리먼 브러더스 파산’과 ‘글로벌 금융위기 현실화’라는 토네이도급 서프라이즈가 있었다.

선거를 한 달 앞두고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빅컷) 전격 인하할 만큼 비상 경제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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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미국 대선을 수 일 앞두고 리먼 브러더스 파산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전격 인하했던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맞붙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는 불운한 10월의 서프라이즈가 닥쳤다. ‘이메일 스캔들’이다.

제임스 코미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대선을 11일 앞두고 클린턴 후보의 개인 이메일 관리 문제에 대한 재수사 방침을 밝히면서 선거판이 요동쳤다.

이 사건은 클린턴 후보가 국무부 장관 시절 개인 서버로 송수신한 이메일 중 일부가 국가 기밀 정보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당초 FBI는 고의성이 없다며 무혐의 결정했다.

그런데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입장을 번복해 재수사 결정을 내리자 애국심 강한 유권자들 사이에서 힐러리 후보에 대한 실망감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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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 대선을 불과 11일 앞두고 이메일 스캔들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재수사를 결정해 대선 판세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던 제임스 코미 FBI 국장. <연합뉴스>


지금 와서 보면 사법리스크 덩어리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선거판에서 상대편의 사소한 사법리스크로 인해 백악관 티켓을 거머쥐는 흥미로운 사건이다.

그런데 올해 대선을 앞두고 이상하게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당선을 감지할 수 있는 10월의 서프라이즈가 보이지 않는다.

초대형 바람이 없이 잔잔히 흘러가는 정치 판세는 금융시장에서 ‘공포지수’로 불리는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의 ‘변동성 지수’(VIX)에서 시각적으로 확인된다.

2008년 오바마, 2020년 바이든 당선 구간에서 대형 이벤트로 인해 투자 심리가 요동치고 그 결과 VIX 지수가 50~60선까지 치솟았다.

반면 2016년 트럼프 당선 구간과 2024년 10월 현재 구간에서는 기준선인 20 전후에서 움직이는 흐름이다.

오바마·바이든 당선 국면의 VIX 수준(격변)과 트럼프가 승리한 2016년과 현재 시점(안정)이 판박이로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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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대한 투자자 공포심리를 보여주는 변동성 지수 움직임과 미국 대선 결과.


VIX지수의 격변적 흐름에서 유권자들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변화와 혁신 이미지가 강한 민주당 후보를 선호한다고 가정하면, 지금의 안정적인 지수 흐름은 유권자들이 변화와 개혁의 민주당 후보에 손이 가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10월의 서프라이즈라는 외생 변수가 없는 가운데 부각되는 요소는 후보 자체가 갖는 매력도다. 안타깝게도 해리스 부통령은 인물 매력도 측면에서도 시원찮은 평가를 받는다.

바이든 후보의 경우 고령에도 불구하고 대선을 향한 세 번의 도전, 36년의 상원의원 활동,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은 슬픈 사연 등 풍부한 서사로 대중들에게 ‘엉클 조’로 어필했다.

반면 해리스 후보는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에서 미국 부통령으로 수직상승한 짧은 정치 이력 때문에 리더십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그가 말하는 ‘기회 경제’ 역시 후보 자체의 정책 경험이 워낙 짧다보니 유권자들 사이에서 흡인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때문에 골수 민주당 집토끼들조차 해리스 부통령이 과연 ‘트럼프 대항마’이자 미국을 위기에서 살릴 적임자인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다.

단적으로 2020년 대선 직전 트럼프 제국의 중심인 시카고 트럼프 타워에 ‘바이든-해리스’ 이름이 마치 배트맨 조명처럼 대문짝만하게 비춰지는 이벤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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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저지를 위해 미국철강노조가 시카고 트럼프타워 벽면에 바이든-해리스 이름으로 조명을 비추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 대담하고 불법적인 퍼포먼스를 벌인 주체는 다름 아닌 미국철강노조였다.

절대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결기로 이 노조는 정치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런데 120만명의 노조원을 거느린 이 단체가 이상하게 올해 잠잠하다.

지난 7월 바이든 대통령에서 해리스 부통령으로 민주당 대선 후보가 바뀌자 홈페이지를 통해 공식 지지 선언을 한 뒤 지금까지 전국 회의 등에서 해리스 응원 발언과 지원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민주당의 또 다른 강력한 집토끼인 북미화물노조는 심지어 해리스 지지를 포기했다.

조합원 130만명을 거느린 이 노조가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것은 28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노조는 “양당 후보 모두 노동자 이익을 보장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해리스 지지를 거부했다.

한마디로 두 후보 모두 비호감이라는 것인데, 친노조 정책의 민주당으로써는 충격적인 결과다.

한국에서는 이 뉴스가 크게 다뤄지지 않았지만 노조가 열성적으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미국 선거에서 대단히 중요한 뉴스다.

수 백만명의 노조원들이 트럼프 편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노조 지도부가 눈치를 보며 민주당 지지 퍼포먼스를 벌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노동계급의 백인 유권자의 트럼프 지지가 몰리면서 노조의 민주당 지지가 소극적으로 바뀌었다고 진단한다.

최근 AP통신 여론조사 결과도 해리스 캠프에 위기감을 키우는 신호였다.

이 조사 결과는 해리스 모멘텀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거부감이 크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AP통신과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는 2016년 민주당 여성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여론조사 결과와 최근 해리스 부통령 여론조사 결과를 비교했는데, 놀랍게도 해리스가 여성이기 때문에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37%)이 2016년 클린턴 때(29%)보다 8%포인트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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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통신·NORC 여론조사 결과. 클린턴 때보다 해리스 때 여성후보라는 점이 득표에 불리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더 높음을 알 수 있다. <자료=AP통신>


퍼스트레이디·상원의원·국무장관 등 입법부와 백악관, 행정부에서 다양한 정치 경험을 쌓은 힐러리 클린턴마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고전하다 패배했다.

해리스 입장에서는 ‘여성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이 8년 전보다 더 커진 유권자 지형에서 트럼프와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지지율을 높여주는 ‘10월의 서프라이즈’를 즐기고 있다. 산업계의 든든한 우군이자 세계적 인플루언서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와 이스라엘이 그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중동 정세에 거대한 화염을 일으키자 조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 위기관리 능력을 둘러싸고 국민적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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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펜실베이니아주 유세에서 춤을 추며 바람몰이 역할을 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과거 민주당을 지지했던 일론 머스크 CEO는 대선 막판 트럼프의 치어리더를 자처하며 선거 판세를 좌우할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를 찾아 찬조 연설을 하고 춤까지 췄다.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가 정확히 50대50으로 나뉘는 미국 사회에서 유권자들은 어느 한쪽에 압도적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경합주 판세가 전체 판세를 좌우하는 구조다.

힐러리 클린턴 때보다 ‘여성’이라는 점이 득표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응답이 ‘8%포인트’ 더 많아진 점, 민주당 집토끼인 ‘거대 노조’가 지지를 포기한 점, 그리고 호감도를 높여줄 ‘10월의 서프라이즈’가 없는 현실은 1만~2만표 차이로 경합주 승패가 바뀌는 현실을 고려할 때 해리스 캠프에 중대한 위기 징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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