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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 (일)

[법원취재썰][단독]발달장애인=심신미약? 비장애인과 같나?...11월 국민참여재판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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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정)

하늘색 죄수복을 입은 피고인이 법정에 들어옵니다.

위축되거나 주눅 든 여느 피고인과는 다릅니다.

마냥 밝지도 않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남의 재판을 보는 방청객 표정과 가깝습니다.

재판이 길어지자 주변을 둘러보고 의자도 살짝 흔들어봅니다.

이 씨는 2023년 5월, 버스정류장에서 주인 없는 지갑을 주워 돈을 써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배운 행동은 할 수 있지만 법적, 도덕적 행동 판단은 불가능한 '초등학생' 수준의 발달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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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씨 진단서 중 일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겉으로 봤을 때 평범한 이 피고인은 3급 발달장애인입니다.

(현재 발달장애인 등급제는 폐지돼 법적 용어로는 '심한 지적장애' 입니다.)

이 씨 정도의 발달장애인은 통상 '발달장애인'에 대해 가진 인식과는 좀 다릅니다.

한눈에 봤을 때 발달장애인으로 보이지도 않고 학습을 통해 사회생활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도덕적 행동과 비도덕적 행동을 구분할 순 없습니다.

주인 없는 물건을 쓰는 게 잘못된 행동인지도 모릅니다.

#주인 없는 지갑 훔치고 중고나라 사기...'장애인' 이용하는 '비장애인'



이 씨의 이런 점을 이용한 비장애인들 때문에 전과도 여럿 생겼습니다. 한 노숙인은 이 씨에게 "추워도 지낼 곳이 있다"며 일을 시켰습니다. 노숙인의 말만 믿고 시키는 대로 한 이 씨는 범죄 중간 전달책으로 일했고,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노숙인은 중고나라 사기 방법도 알려줬습니다. 이 씨를 이용한 건 노숙인뿐만이 아닙니다. 연인관계를 이용해서, 자신을 좋아하는 이 씨의 마음을 알아채고 돈을 갖다 바치게 한 비장애인도 있습니다.

이씨가 중고나라 사기를 치고, 훔친 돈 등은 이들에게 건네졌습니다.

#비장애인에게 이용당하고 수사단계에선 보호받지 못하는 발달장애인





주변의 도움으로 이 씨가 자신을 이용한 비장애인들을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수사에서도, 이들을 고소한 수사에서도 이씨가 '발달장애인'이라는 점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연인관계였다는 비장애인의 말만 듣고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발달장애인이 수사를 받을 땐 반드시 신뢰하는 관계인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경찰이 발달장애인인지 확인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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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8일 경찰 조사 중 일부 대목 발췌




이 씨는 왜 자신이 발달장애인이 아니라고 했을까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장애인복지카드에는 '지적장애인' 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자신이 '지적장애인'인 건 알지만 '발달장애인'이라는 말은 몰랐습니다. 조사 말미에 자신이 '지적장애 3급이다.'라고 밝힙니다. 그러나 신뢰관계인을 끝내 동석시키지 않은 채 조사가 끝납니다.

결국 재판에 넘어온 이 씨. 법원에 와서야 변호인의 도움으로 부당한 조사에 대해 항변할 수 있게 됐습니다. 판사는 신뢰관계인 없이 조사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증거에서 배제 시켰습니다.

#이럴 땐 '비장애인', 저럴 땐 '심신미약'…발달장애인 양형기준도 없다



실제로 이 씨를 얼핏 보면 경찰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비장애인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수사와 재판에서 이 씨는 비장애인과 똑같은 대상으로 고려됐습니다. 누군가의 조력 없인 이 씨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 발달장애인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법은 발달장애인에 대해 처벌 기준을 따로 정해두진 않았습니다. 판사들은 발달장애인 양형기준에 대해서 따로 없지만 심리를 할 때 고려를 한다고 합니다. 유일하게 기대볼 수 있는 건 심신미약이지만 발달장애인을 심신미약으로 분류할지 말지는 때에 따라 다릅니다. 그래서 변호사들은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발달장애인이 외형적으로 법정에 있는 동안 대화 나눈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판사 개개인별로 판단하게 하면 들쭉날쭉하고. 판단 기준이나 이런 게 다 명확하지 않아서 양형기준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손영현 변호사)

#발달장애인 양형만 두고는 처음으로 열리는 국민참여재판



장애를 항상 심신미약으로 볼 순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씨를 일반인과 동일하게 볼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래서 이 씨에 대해 어떻게 처벌해야 할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11월 12일 국민참여재판이 열립니다. 그동안 발달장애인 피고인을 둔 국민참여재판은 있었지만, 양형만 두고 따지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장애인에게 별도로 양형기준을 마련한다고 해서 또 다른 차별인 것도 아닙니다. 우리 법은 1953년 만들어질 때부터 이미 농아인에대해선 형법상 감경 조항이 있습니다.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의 사정을 배려 한 것입니다. (이에 따른 처벌 공백은 따로 다루겠습니다.)

범죄행위를 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법은 비장애인도 술을 마셨는지, 반성은 하는지 세세하게 따지는 기준이 있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장애인들을 어떻게 봐야 할진 따로 명시해두지 않은 것은 이들에 대해 우리 사회의 고민의 깊이가 어느 정도였는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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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바로가기 :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202122



여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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