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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토)

[데스크 칼럼] 헌법재판관 ‘정원 미달’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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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헌법재판관 ‘정원 미달’ 사태가 발생했다. 이종석 소장과 이영진·김기영 재판관이 지난 17일 임기 만료로 퇴임하면서 9명 정원인 헌재가 6명 체제로 축소된 것이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2012년에는 퇴임한 재판관 1명의 후임을 1년 넘게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추가로 4명이 동시 퇴임하면서 헌재가 4명 체제가 된 적이 있다. 또 2018년에도 재판관 5명의 동시 퇴임으로 헌재가 4인 체제로 돌아갔다.

이렇게 6년마다 헌법재판관 미달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모두 국회 추천 몫인 후임 재판관 3명이 여야 대립 속에 제때 선출되지 않은 탓이다.

헌재는 재판관이 6명 이하가 되면 사건을 심리할 수 없는 게 원칙이다.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재판관 미달 사태를 앞두고 헌재가 비상 조치를 통해 기능 마비를 막았다. 이미 심리가 진행되고 있는 사건은 재판관 퇴임으로 헌재가 6명 체제가 되더라도 심리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심판 등에 대한 심리를 계속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이번에는 민주당이 대통령 탄핵을 거론하는 상황에서 국회가 헌법재판관을 추천하지 않으면서 논란이 됐다. 헌재가 재판관 미달로 사건 심리를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고위 공직자들이 잇따라 탄핵 소추된다면 이들은 심리조차 받지 못한 채 장기간 직무 정지가 되기 때문이다. 헌재 마비가 국정 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헌재가 심리 계속 결정을 내렸지만 재판관 6명으로 최종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헌재는 “만약 재판관 6명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나머지 3명의 재판관 의견에 따라 사건의 향배가 달라질 수 있는 경우에는 현재 공석인 재판관이 임명되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법률에 대한 위헌, 고위 공직자 탄핵, 정당 해산, 헌법소원 등 주요 사건에 대한 헌재 결정은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 권리가 침해되거나 국가 운영에 차질을 빚을 우려도 커진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는 방안이 여러 가지로 제시돼 왔다. 우선 임기가 만료된 재판관도 자신의 후임이 부임할 때까지 업무를 맡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헌재 심리와 결정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이 헌법이나 법률에 이런 장치를 두고 있다고 한다.

또 예비 재판관을 도입하는 방법도 있다. 후임 재판관이 임명될 때까지 임시로 사건을 심리·결정할 수 있는 보충 인력을 사전에 임명해 두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터키, 볼리비아 등이 예비 재판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방안들은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 임기 만료 재판관을 후임 재판관 임명 때까지 재직하게 한다면 헌법에 규정된 재판관 임기 규정을 어기는 게 될 수 있다. 예비 재판관도 헌법에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도입한다면 위헌일 수 있다. 이를 위해 헌법 개정을 한다는 것도 기대하기 힘들다.

헌법재판관 추천은 국회의 의무다. 그러나 국회는 이런 의무를 여러 차례 어겼다. 앞으로 6년 뒤에도 국회 추천 몫 재판관 3명이 제때 임명되지 못해 재판관 미달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언제든지 국회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이 헌법재판관에 대한 탄핵 소추로 재판관 미달 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따른 피해는 국민이 보게 된다.

헌법의 최종 수호자는 국민이다.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권한도 국민에게 있다. 국회가 국민에게 피해를 준다면 정치적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금원섭 기자(carp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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