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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 (일)

전세계 유일 '남편 성' 따르는 법…일부러 결혼 안 하는 日 부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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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지자체, '선택적 부부별성' 의견서 줄채택

법적 의무화는 일본이 유일…유엔도 철회 권고

결혼하면 부부가 한쪽의 성으로 통일해야 하는 일본에서는 최근 결혼 후에도 성을 따로 쓰자는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관련한 의견서를 연이어 채택하면서 보수적인 일본의 분위기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결혼 후 부부가 일방적으로 상대방의 성을 따를 필요가 없는 '선택적 부부별성(夫婦別姓)' 논의와 실현을 요구하는 지방의회가 늘고 있다는데 주목했다. 주요 지자체 격인 도도부현과 기초지자체 단위인 시구정촌에서 채택된 관련 의견서만 300개가 넘는다. 일본에서는 지방자치법 제 99조에 따라 채택된 지방의회 의견서는 의장 명의로 국회나 관계 부처에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조만간 국회에서도 해당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할 가능성이 커졌다.

아시아경제

선택적 부부별성 관련 일러스트. 남편은 '다나카', 여성은 '야마모토'라는 성을 유지하는 모습이다. (사진출처=이라스토라)


지난달 오카야마시에서는 결혼 후 남편의 성으로 바꾸면서 자기 상실감을 느낀 여성, 배우자의 성을 따를 것을 권유받아 고민 중인 남성 등 남녀 10여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민단체 모임이 열리기도 했다. 한쪽의 성을 따르지 않기 위해 사실혼 관계만 유지하고 있다는 한 참가자는 닛케이에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성을 각각 지정해 제각기 성을 갖고 있지만, 일단 딸은 자신의 성과 이름이 멋지다며 결혼 후 성을 바꾸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결혼 후 배우자 한 쪽의 성씨를 따르는 관행은 일본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러 국가에서 볼 수 있으나, 이를 법으로 의무화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일본이 유일하다. 동일한 성을 쓰지 않으면 법적으로 혼인을 인정받을 수 없어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통상 여성이 남편의 성을 따른다. 사회보험이나 건강보험, 연금, 은행 계좌, 급여 이체 등의 경우 옛 성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결혼을 하게 되면 명의 변경을 하는 불편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논문을 집필하는 연구원 등은 성이 바뀌면 이전의 논문이나 실적을 증명하기 어려워 이 제도는 경력 단절의 원인으로도 지적돼 왔다. 시민단체인 선택적부부별성 전국진정액션은 "해외 학회에서 논문을 집필한 사람의 성과 여권에 기재된 성이 달라 동일 인물인지 의심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2개의 성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 해외에서는 입국 심사에서도 리스크가 수반된다"고 호소했다.

일본은 그동안 유엔(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로부터 세 차례 민법을 개정하라는 권고를 받았으나 국회 논의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에 맞춰 1996년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을 담은 민법 개정안이 마련됐어도 여당 자민당 내에서 의견이 정리되지 않아 그대로 방치된 상황이다.

다만 최근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일본 사회 각 계층에서 커지는 모양새다. 지난 6월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는 "결혼 후 업무상 옛 성을 사용하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지만 계약이나 은행 계좌 개설을 할 수 없는 등 한계가 있다"면서 "성을 바꾸면서 겪는 일상생활과 직업생활상의 불편과 불이익이 여성에게 치우쳐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사 여론조사에서도 각자 다른 성에 찬성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이다. 지난 7월 닛케이 여론조사에서는 별성 찬성이 69%로 반대인 23%를 훨씬 웃돌았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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