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은 북한이 지난 8일부터 러시아 파병을 위한 특수부대 병력 이동을 시작했다고 밝히며 위성 사진 등 관련 자료를 18일 공개했다. 국가정보원 제공 |
러시아는 18일(현지시간) 북한군 1500명이 블라디보스토크로 1차 이동했다는 등의 국정원 발표에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크레믈궁과 러시아 외무부, 국방부 모두 이날 오후 7시까지 북한군 파병 관련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
국정원의 발표는 세계 주요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지만 타스, 리아노보스티 등러시아 관영 통신사의 웹사이트에서는 관련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 메두자 등 독립언론이나 텔레그램 뉴스 채널 등 일부 언론만 이 소식을 전했다.
러시아 외무부 블라디보스토크 사무소 텔레그램 채널에 국정원 발표 관련 연합뉴스 기사와 함께 “무서워?”라는 글이 올라왔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으나 이 게시물은 곧 삭제됐다. 러시아 외무부 관계자는 “개인 메시지를 전체 채널로 잘못 보낸 사례”라고 설명했다고 러시아 매체 렌타가 전했다.
이달 초 우크라이나 언론을 통해 북한군 파병설이 제기됐을 때도 러시아는 '가짜 뉴스'라며 부인한 바 있다. 지난 10일에도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레믈궁 대변인은 “또 다른 가짜 뉴스로 보인다”고 일축했다. 주중 거의 매일 브리핑을 통해 언론 질문에 답변하는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날은 브리핑을 건너뛰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이날 참여한 브릭스 미디어 간담회에서 북한군 파병 관련 언급을 하지 않았다.
반면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는 북한군 파병설 관련 “러시아가 더 크고 긴 전쟁을 원하면서 동맹국들을 전쟁에 끌어들이려 한다는 사실이 재차 입증됐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AFP통신에 “북한군이 전장에 있다면 전쟁이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는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국가정보원은 최근 우크라이나 정보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러-우크라 전선에서 활동 중인 것으로 보이는 북한군 추정 인물의 사진을 확보했다며 18일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국정원은 "해당 북한군 추정 인물 사진을 자체 AI 안면인식 기술에 적용한 결과, 이 인물은 작년 8월 김정은이 전술미사일 생산공장을 방문했을 당시 김정은을 수행한 북한군 미사일 기술자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진은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북한군과 지난 8월 북한 노동신문에 게재된 해당 인물의 모습. 국가정보원 제공 |
이 관계자는 “러시아가 시간을 벌고 어떤 식으로든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더 많은 협력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유럽 대서양 공동체와 전 세계의 즉각적이고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다.
국가정보원은 이날 “북한군의 참전 개시를 확인했다”며 1만2000여명 규모의 병력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장에 대규모 병력을 파병키로 한 사실을 한국 정부가 공식 확인하면서 한반도 내에 끌어올려지던 긴장은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국제사회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파병론’이 재점화할 것이란 분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전쟁 초반부터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파병에 선을 그어온 나토지만 급변하는 상황을 반영해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북한의 파병 결정에 대해 “현재까지의 우리의 공식 입장은 ‘확인 불가’이지만, 물론 이 입장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의 주장에 “증거가 없다”고 거리를 두다가 한국 정보당국 발표에 심각성을 체감한 것으로 보인다.
뤼터 사무총장이 한국 등 파트너국들과 긴밀히 접촉 중이라고 언급한 만큼 조만간 나토 차원의 공식 입장이 뒤따를 전망이다.
서방에서는 러시아와 북한에 대한 제재를 통해 일단 군사적 충돌을 피하면서 집단적이고 신속한 경고 신호를 보내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개입으로 각국에서 다소 주춤했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도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발표한 ‘승리계획’에도 관심이 모인다.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관련해 미묘한 입장 변화가 감지되는 조짐도 있다. 지난 2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파병 가능성에 대해 “무엇도 배제되어선 안 된다”고 해 파장이 일었다. 5월에는 폴란드, 발트 3국 등이 유사한 주장을 내놨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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