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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기자수첩] ‘도그마’에 갇힌 카카오페이 경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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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신원근 카카오페이 대표는 지난 17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신 대표는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국정감사 당일 증인 신청이 철회되면서 신 대표의 해명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앞서 카카오페이가 국민 4045만명분의 개인신용정보를 중국계 기업 알리페이에 제공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회가 신 대표의 증언을 요구했다. 회사는 이용자 동의 없이 민감한 정보를 해외 기업에 넘긴 터라 위법 논란에 휩싸인 것은 물론 도덕적인 측면에서 여론의 뭇매를 받고 있다. 국정감사는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후 신 대표의 첫 공식 석상이 될 수 있었다.

카카오페이 경영진은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애써 책임을 미루거나 뒤늦게 사과하곤 했다. 2021년 12월 ‘스톡옵션 먹튀’ 논란 때도 마찬가지다. 류영준 당시 카카오페이 대표 등 임원 8명은 스톡옵션으로 확보한 주식 중 900억원어치를 같은 날 처분했다. 임원들의 대량 매도가 발생하자 카카오페이 주가는 한 달 만에 25%가량 빠졌다. 주주들은 물론 자사주를 들고 있던 직원들도 “배신당했다”며 분노했다.

스톡옵션 먹튀 논란이 불거지고 경영진의 공식 입장은 한 달 가까이 지나 처음 나왔다. 그마저도 대외적인 사과가 아니었다. 류 전 대표가 사내 메시지로 “경영상 판단의 옳고 그름을 떠나 대내외적으로 많은 노이즈(잡음)가 발생한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모호한 입장을 전한 게 전부였다.

금융권 일각에선 신 대표가 국회에 나왔더라도 제대로 된 해명 및 사과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 본다. 카카오페이 측이 “위법 사실이 없다”는 주장만 한 차례 내놓은 채 도덕적인 지적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페이는 이 사건이 알려지기 불과 두 달 전 ‘2023년 ESG 리포트’를 발간하며 “개인정보 보호 관련 침해 0건”이라는 성과를 자랑했다. 알리페이와 정당한 개인신용정보 위수탁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회사 홈페이지에 공개된 개인신용정보 위수탁 기업 명단에 알리페이는 쏙 빠져있다. 이용자들을 기만한 정황이 속속 드러났으나 경영진은 계속 함구 중이다.

두 차례 도덕성 논란 속 카카오페이 경영진의 대처를 보면 도그마(독단적 신념)에 빠진 것 같다. 자신들의 경영 판단에 잘못은 없으나 여론이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신념 때문에 3년 전 수십만명의 개미들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리고 올해는 수천만명의 이용자들을 뿔나게 했다.

금융은 신뢰를 먹고 사는 업종이다. 카카오페이가 우리 사회 보통의 도덕관념을 준수하지 못한다면 그토록 바라는 국민 금융 플랫폼으로 거듭날 수 없다. 외부의 지적을 외면한 채 숨는 행동은 회사의 신뢰도만 좀먹을 뿐이다. 이제라도 일반 상식 수준에 맞춰 성찰하고 책임지려는 경영진의 모습이 필요하다.

김태호 기자(t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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