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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유배 가야만 맛볼 수 있었다…그렇게 별미였다고? 다채로운 역사 품은 '굴전'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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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중식삼림(中食森林)] 홍콩 굴전 하오젠(?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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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는 한 나라의 사회 정치 경제가 은연중에 녹아 있다. 중국 음식도 예외가 아닌데 세계로 퍼진 중국 음식 속에는 현지의 문화와 역사까지 곁들어 있다. 지구촌 중국반점의 요리를 통해 중국 본색을 알아보고 세상을 들여다본다.


홍콩이나 대만 여행을 가면 하오젠(蠔煎)이라고 하는 굴전을 먹어보는 것도 좋겠다. 굴전이야 우리나라에도 있고 또 굴이라는 해산물이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엇갈리는 음식이니 홍콩 혹은 대만 굴전에 대한 평가도 각각 다르겠지만 어쨌든 한국 굴전과는 또 다른 특이한 맛이 있다.

일단 생김새부터가 우리 굴전과는 달라서 여러 개의 굴을 모아 빈대떡 부치듯 크게 부친 것이 다르고 맛 또한 딥 프라이드(deep fried) 방식으로 기름에 푹 담가 순간적으로 튀겨내는 것이 은근한 불에 지지듯 부치는 우리 굴전과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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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굴전 하오젠(蠔煎). 출처 : 바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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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이나 대만에서 굴전을 먹을 때면 중국에도 우리와 비슷한 굴전이 있다는 반가움과 동시에 북경이나 상해 등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음식이기에, 그러니 이게 과연 중국음식일까라는 궁금증도 생긴다.

하오젠(蠔煎)이라는 굴전이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 중국음식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옛날에는 변방이었던 광동성과 복건성을 중심으로 발달한 음식이고 북경이나 남경, 상해 등지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요리였을 뿐이다. 이유는 옛날 기준으로 북경은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고 남경과 상해 부근 바다에서는 굴이 나오지 않았으니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굴은 상어 지느러미나 전복, 해삼처럼 건어물로 만들어 운반 보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기에 굴은, 그리고 굴전은 아는 사람만 아는 별미였고 식도락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만 떠돌던 진미였다.

굴맛을 아는 중국인들이 얼마나 그 맛에 빠져들었는지는 우리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중종 때 중국에서 사신이 왔다. 이 사신이 오는 도중에 굴을 맛있게 먹었던 모양이다. 한양에 도착해서 말하기를 도착하는 곳마다 석화(굴)를 내오기에 한양에 가면 맛있는 석화를 실컷 먹을 수 있겠다며 기대했는데 한양에는 왜 굴이 없냐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 중종 23년의 기록이다. 사신으로 와서 굴 타령을 했을 정도였으니 당시 중국에서 굴을 얼마나 진미로 여겼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역사상 중국 최고의 미식가로 꼽히는 11세기 송나라 때 시인 소동파도 굴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모양이다. 멀리 조선에까지 소문이 났으니 정조 때의 실학자 정약용이 귀양살이할 때 굴을 먹으며 지은 시에 그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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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좌)와 그가 좋아하던 굴. 출처 : 바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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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소동파의 굴 사랑에는 내력이 있다. 소동파는 송 철종 때 광동성 혜주(惠州)로 귀양을 갔다. 귀양지로 가는 길에 광동성 동관(東莞)을 거쳐 갔는데 옛날 이곳은 정강호(靖康蠔)라는 굴로 유명한 고장이었다. 소동파가 여기서 정강 굴을 먹으며 그 맛을 찬양하는 시를 지었으니 이로 인해 정강 굴은 중국 식도락가들 사이에서 한번 맛봐야 할 음식, 하지만 광동성까지 귀양을 가야만 먹어 볼 수 있는 굴로 소문이 났다. 이런 입소문이 조선 선비들의 귀에까지 전해졌으니 정약용이 귀양지에서 굴을 먹으며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소동파의 굴 예찬을 인용했던 배경이다.

중국에서 굴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해산물이었다. 삼면이 바다인 만큼 굴이 흔한 우리와는 달리 중국에서는 5세기 무렵에야 비로소 굴이라는 해산물을 알게 된다. 동진(東晉) 때의 문헌 『영표이록』에 중국의 영남, 즉 광동 사람들은 굴을 먹고 그 껍질로 담장을 쌓는다며 신기해했다.

이런 먼 곳의 쉽게 맛볼 수 없는 해산물인 데다 소동파를 비롯해 여러 시인 묵객들이 귀양지에서 맛본 굴에 대한 예찬을 쏟아냈으니 굴이 흔한 조선에 온 중국 사신들이 굴 접대를 받아보고는 시도 때도 없이 굴 타령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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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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