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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기자수첩] 韓증시, 전쟁 중인 나라보다 못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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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권오은 기자




‘정책이 핵심이다(Policy is key).’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이달 16일 한국 은행업종을 분석한 리포트를 내면서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은행주는 정부가 올해 초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한 이래 수혜 종목으로 첫손에 꼽혔다.

실제 주가는 가파른 오름세를 보였다. KB금융 주가는 올해 들어 75% 뛰었다. 하나금융지주 54%, 신한지주 44%, 우리금융지주 28% 등 다른 금융주도 모두 높은 연중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모건스탠리는 은행주 추격 매수를 권하지는 않았다. 최근 한국거래소가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발표하는 등 뉴스 흐름은 긍정적이지만, 당장 주가가 더 오를 만큼 실제 여건이 좋아졌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모건스탠리는 장기적 정책 경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지속될지 지켜보겠다는 취지로 읽혔다.

주식시장의 가치를 정하는 척도는 단연 각 기업의 경쟁력이다. 국내 증시가 지난 7월 이후 고꾸라진 것도 기업의 이익 기대치가 꺾여서인 측면이 크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는 지난 8월 말 278조원에서 현재 267조원으로 3.5% 내려갔다. 같은 기간 2025년 영업이익 전망치는 345조원에서 328조원으로 5% 줄었다.

그렇다고 정책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최근 극적인 반전을 만들어냈던 중국이 대표적인 예다. 마이너스(-)를 전전하던 상하이종합지수는 중국 정부가 경기 부양책을 꺼내 들면서 연중 상승률이 7%대까지 올라섰다. 효과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시각도 적지 않지만, 최소한 2년 넘게 이어졌던 증시 침체 분위기를 바꿔놓긴 했다.

이스라엘 증시도 마찬가지다. 중동 정세가 불안한 와중에도 텔아비브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상위 125개 종목을 추종하는 TA-125지수는 사상 최고치에 다가섰다. 이스라엘 정부가 투자자에게 신뢰를 얻고 있다는 증거다.

아르헨티나 메르발(Merval)지수도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 취임 이후 2배 가까이 뛰었다. 여전히 인플레이션 문제가 심각하고 긴축에 따른 경제적 고통도 상당하지만, 밀레이 대통령의 정책이 외국인 투자자의 시선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외 주가지수 그래프를 보다가 국내 시장을 바라보면 정책이 아쉬워질 수밖에 없다.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는 전쟁 중인 러시아를 제외하면 주요국 지수 중 가장 부진하다.

정책이 뒷받침은커녕 불확실성을 키우는 지경이다. 금융투자소득세는 2025년 시행을 두 달여 앞두고 예정대로 도입할지, 유예할지, 폐지할지 아직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으로 꼽혔던 세법 개정은 동력을 얻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 역시 갈팡질팡하는 상황이다.

국내 투자자는 이제 마냥 해외 시장을 부러워하는 대신 투자 이민에 나서고 있다. 올해 9월 말 국내 투자자의 외화증권 보관 금액은 1379억4000만달러(약 188조원)로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국장(한국 주식시장)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당연시되는 상황을 방치할 때가 아니다. 정책 리스크 때문에 한국 자본시장이 전쟁 중인 나라보다 못할 수는 없지 않나.

권오은 기자(oheu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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