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7 (목)

사먹는 빵은 혁명을 낳았다, 따뜻한 밥이 낳은 건…[권대영의 K푸드 인문학]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情 많은 민족’ 한국인, 빵 아닌 밥문화 영향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정(情)이 많은 민족이라 한다. 왜 유난히 우리만 정이 많은 민족일까? 결국 빵문화와 밥문화 차이이다.

서양의 빵 문화는 유럽의 밀 농사와 연관되어 있다. 밀의 특성은 가을에 씨가 뿌려져 겨울을 나면서 봄에 수확하는 품종이다. 따라서 겨울에 비가 많이 오는 기후 특성을 가진 지역에 잘 자란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벼는 봄에 뿌려져 가을에 수확하는 품종이다. 특히 벼는 여름에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서 잘 자라고 강한 햇빛을 받아야 알이 토실토실 맺힌다.

인류가 아나톨리아반도를 거쳐 유럽으로 이동할 때 이 지역에 풍부한 밀을 발견하면서 밀을 기반으로 빵 문화가 탄생했다. 유럽 빵 문화는 수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문명을 비롯해, 미노아, 크레타, 미케네 문명, 그리스, 로마에까지 이르렀다. 반면에 우리 민족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지나 우랄산맥을 거쳐 아무르강을 지나 우리나라 지역에 자라고 있는 쌀(단립종)을 채취, 재배하면서 밥 문화를 탄생시켰다.

밀가루를 이스트의 도움을 받아 물에 부풀린 다음 화덕과 같은 높은 온도에서 구우면 단백질(글루텐) 그물구조는 부풀려 유지되고 끈적해진(호화·糊化) 전분은 망 사이사이에 끼어들어가 아주 독특한 형태와 맛을 낸다. 화덕이 고온이기 때문에 물이 날아가 수분활성도는 크게 낮아지고 쉽게 상하지 않는다. 그래서 빵은 잘하면 며칠을 두고 먹을 수 있다. 먼 길을 갈 때는 휴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쌀은 글루텐과 같은 그물구조 단백질이 없기 때문에 많은 양의 물이 있으면 풀어져 죽이나 풀이 된다. 쌀은 일정한 물의 양이 있을 때만 전분의 호화가 알맞게 되어 밥쌀 구조를 유지할 수 있고 맛있는 밥이 된다. 그러나 식으면 바로 노화되어 딱딱해지고 맛이 없어진다. 물이 여전히 많아 미생물에 의하여 쉽게 쉬기도 한다. 예로부터 가장 맛있는 밥은 가마솥에서 바로 지은 밥이다.

빵의 저장할 수 있는 특징 덕에 일찍이 서양에서는 맛있게 만드는 제빵사가 있었고, 빵을 만들어 파는 가게가 있었다. 일반 시민들은 빵을 사서 먹어야 했고, 빵을 사 먹기 위하여 화폐가 발달하였다. 2000년 전 화산에 묻혀버린 폼페이에서 발굴된 빵, 빵집의 오븐, 빵 가게, 죽은 제빵사의 모습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빵값에 항상 민감하였다. 항상 빵의 가격과 화폐의 가치가 냉철하게 비교되었으며 빵을 구할 돈이 없을 정도로 화폐가치가 떨어지면 일반 시민들은 빵을 달라 외쳤고 이것이 곧 로마의 멸망,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으로 이어졌다.

밥은 쉽게 쉬기 때문에 밥 문화는 시장화할 수 없었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가나 손님이 오면, 심지어 길가는 나그네가 와도 바로 지은 따뜻한 쌀밥을 대접하였다. 텃밭에 있는 푸성귀와 있는 집안에서 기르는 가축을 잡아 지극정성으로 밥상을 차렸다. 밥을 지어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게 하고 편히 쉬어가게 하였다. 이 따뜻한 밥을 먹게 하고 편히 쉬어가게 하는 밥 문화가 정(情)의 원천이다. 정성 들여 지은 따뜻한 밥에는 따뜻한 마음과 정이 있었다. 돈으로 빵을 사야 하는 서양인들에게는 결코 탄생할 수 없는 문화이다.
쌀과 반찬거리가 모두 시장화되어 버린 요즈음은 우리 전통 밥 문화에서 느끼는 정을 옛날 그대로 느낄 수 없다. 아쉬울 따름이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