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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기준금리 내려놓고 대출금리 통제? 그럼 왜 인하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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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연 기자]

우리는 금리인하 미스터리 1편에서 정부가 올여름 부동산의 이상 급등 현상을 '물가'가 아닌 '금융안정의 문제'로 인식하고, 금리인하를 단행한 이유를 알아봤다. 우리나라 물가지수에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이유도 함께 살펴봤다. 2편에서는 금리인하 효과를 상쇄하는 문제들을 짚어봤다. 정부 개입 논란, 통화량 통제 실패, 금리인하폭 논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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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고금리 시기에 통화량을 줄이는 양적긴축에 실패하면서 통화량은 가파르게 늘어났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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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 인하가 침체한 실물경기를 살리는 경로는 어떻게 될까.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린다는 얘기는 시중은행과의 환매조건부채권(RP·금융기관이 일정기간이 지난 후 확정금리를 보태 되사는 조건으로 발행하는 채권) 거래에 적용하는 금리를 내린다는 뜻이다.

RP 금리가 낮아지면, 은행간 단기거래에 적용되는 콜금리가 하락하고, 이는 시중 단기금리를 떨어뜨린다. 은행들이 단기금리 하락에 맞춰 여·수신 대출금리를 내리면, 기업들의 자금 조달비용이 줄면서 투자가 증가한다.

기업의 투자 증가는 가계의 수입을 늘려주고, 개인들도 돈을 은행에 넣기보단 지갑을 더 많이 열어젖힌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내수가 살아난다. 하지만 금리인하 효과가 상쇄된다면, 내수 회복은커녕 되레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 문제❶ 정부 개입=시중은행들은 지난 15일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일제히 올렸다. 국내 8개 은행이 조달한 자금의 가중평균금리로 대출금리의 원가 개념인 코픽스가 올해 7월 신규취급액 기준 3.42%였는데, 8월에는 3.36%로 하락했다가 9월 다시 3.40%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은행은 코픽스 금리, 은행들의 회사채인 금융채 금리, CD금리 중 하나에 자체적으로 만든 가산금리를 더해 대출금리를 책정한다. 금융당국이 개입하면 은행은 이 가산금리를 함부로 올리거나 내리지 못한다.

기준금리 인하의 효과는 모두 시장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정부가 주택담보대출 금리 등 신용시장의 상품가격을 책정하는 데 개입하면 인하 효과는 상쇄될 수밖에 없다. 이자가 상품을 교환하면서 그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라면, 금리는 금융자금을 사용하는 대가다. 그래서 금융상품의 가격은 금리고, 이는 상품시장처럼 자금 거래가 이뤄지는 신용시장에서 결정된다. 시장 밖에서 결정된 가격은 그만큼 통화정책의 효과를 무력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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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린다고 발표한 지난 11일 금융위원회는 국토교통부·한국은행·금융감독원·은행연합회·제2금융권협회·시중은행 관계자들과 '가계부채 점검회의'를 가졌다.

금융위는 보도자료를 통해서 "이번 회의에서 올해 남은 기간 중 금융권의 가계대출 관리 방안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금리인하기에 당연히 늘어나는 가계대출의 증가세를 고금리를 유도해 억제하겠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금감원이 발표한 가계대출 증감 추이를 보면 올 2~3분기 주담대는 큰폭으로 증가했다. 올해 3월 주담대는 200억원 늘어났는데, 이후 4월 4조1000억원, 5월 5조6000억원, 6월 6조원, 7월 5조4000억원, 8월 8조5000억원, 9월 6조9000억원으로 월마다 증가했다.

시중은행들의 주담대 금리는 11일 현재 상단 기준으로 5%대 후반에 형성돼 있다. 4개월 전보다 1%포인트 가까이 높아졌다. 기준금리는 오랫동안 동결해왔는데, 주담대 금리는 오히려 올랐다.

정부는 관치官治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4일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책의 혼선으로 시중 대출금리가 내려오지 않으면서 금리 인하 효과가 사라졌다"고 지적하자 "부인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 총재는 "은행의 부동산 관련 대출 비중이 과도하게 커서 주택대출 금리 인상은 불가피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7월 이후 여러차례 구두로 은행의 대출금리 결정에 개입해왔다.

이번 개입은 과거 주담대 금리가 기준금리를 밑돌던 상황과는 정반대다. 그만큼 명분도 부족하다.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로 대출이 증가하지 않기를 원했다면, 금리를 성급하게 올리지 말았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주담대 금리 결정에 개입할 수 있었다면, 지난 6월 이후 은행들이 저금리 주담대를 늘려 서울 아파트 가격이 급등했을 때는 왜 이를 방치했느냐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문제❷사상 최대 통화량=지난 긴축의 기간이 사실 '무늬만 긴축'이었다는 문제도 있다. 한국은행이 2021년 8월 기준금리를 올린 이후 3년 2개월간의 긴축은 반쪽짜리 긴축이었다. 금리는 올렸지만 시중 통화량을 줄이는 양적긴축을 하지 못하면서 통화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통화량이 증가하면 반드시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상승한다.

통화량(M2)은 올해 4월에 사상 처음으로 4000조원을 넘어섰다. 통화량은 대체로 꾸준히 증가했고, 2023년 6월 이후에는 한번도 줄지 않았다. 팬데믹이 시작하던 무렵인 2020년 3월 2900조원이던 통화량은 4년 만인 2024년 8월 4062조6000억원으로 30% 이상 늘어났다. 양적긴축에 나섰던 미국 통화량이 2022년 12월부터 2024년 3월까지 꾸준히 감소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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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은행들의 시중 금리에 구두개입 하면 금리인하의 효과가 상쇄될 가능성이 높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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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❸제한된 인하폭=이번 금리인하의 문제는 또 있다. 인하폭이 '제한적'이란 점이다. 그래서 경기침체가 깊어져도 충분히 대응하기 어렵다. 이는 중립금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중립금리는 상품가격을 상승시키거나 하락시키지 않는 중립적인 대출금리를 말한다. 쉽게 말해서 인플레나 디플레가 발생하지 않는 선에서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금리 수준이다.

시중금리가 중립금리보다 높으면 물가상승률이 하락해 중장기적으로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발생한다. 반대로 시중금리가 중립금리보다 낮아지면, 물가가 올라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중립금리가 높아지면 그만큼 기준금리를 끌어올려도 긴축 효과가 충분히 나타나지 않는다. 반대로 중립금리가 낮아지면 금리인하와 같은 통화완화정책의 효과가 기대치를 밑돌 수 있다.

이 총재는 14일 "중립금리 수준을 얘기하면 시장에서 금리 조정 기대가 형성돼 밝히기 어렵다"며 "실질금리가 중립금리 상단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지난 5월 'BOK 국제콘퍼런스'에서 이미 우리나라 중립금리의 수준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한은이 5월에 밝힌 우리나라 중립금리 수준은 2024년 1분기 기준 -0.2~1.3%다. 여기에 물가 목표치인 2%를 더하면 명목 중립금리는 1.8~3.3%다. 기준금리 인하의 하단이 1.8%일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중립금리 추정치는 2000년 1분기 1.4~3.1%에서 2020년 1분기 -1.1~0.5%로 낮아졌다가 올 1분기 -0.2~1.3%로 다시 높아졌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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