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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불통이 반복되는 이유[허태균의 한국인의 心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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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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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보통 사람들은 큰 권력을 가진 리더일수록 자기 마음대로 독선적으로 결정하거나 멋대로 행동하지 않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그것을 존중해서 유연하면서도 지혜롭게 조율하는 모습을 보일 거라 기대한다.

하지만 권력에 관한 심리학 연구들은 정반대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사회적 영향(정보, 타인의 의견 등)을 받지 않고, 자신의 소신과 믿음대로 행동하고, 자신의 성향과 믿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실제 권력을 가진 게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들에게 권력이 연상되는 단어 조합을 풀게 하거나 과거 권력을 가졌던(작은 집단의 리더 역할을 하던) 순간을 상상하게만 해도 그런 결과가 나왔다. 그러니 어떤 권력자가 그런 게 아니라 권력이라는 요망한 것이 아무나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연구 결과가 현실에서 크게 걱정되지 않는 이유는, 젊었을 때부터 자기 마음대로 하고 사회적 영향을 받지 않는 독불장군 같은 사람이 리더가 될 확률은 낮기 때문이다. 평소 윗사람뿐만 아니라 아랫사람의 의견을 두루두루 겸손하게 듣고 그것을 절충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큰 리더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원래 지혜로운 사람이 리더가 될 터이니, 그다음엔 권력의 요망한 힘에 휘둘리지 않게 조심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리더가 되는 과정은 과연 어떠한가? 한국인의 심리적 특징으로 주체성이 있다. 이 주체성은 자신이 영향력을 가지고 자신의 존재감을 크게 느끼기를 원하는 성향을 얘기한다. 이런 한국인은 뭔가 이미 결정되어 있어서 자신이 어쩔 수 없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너무나도 싫어한다. 그래서 한국 사회는 유달리 기득권을 싫어하고, 항상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는 세상을 외치고, 가위바위보도 한 번 지면 삼세판을 외치고, 항상 반전을 좋아하고 역전을 꿈꾸며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아마 이런 특성이 전 세계 유례없는 사회·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래서 한국인들이 권력에 저항하는 캐릭터에 열광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대부분의 권력자는 임기 말 불통(국민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으로 욕먹었다. 개개인의 국민은 어쩌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상황에서, 그 권력에 대차게 대드는 사람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자가 다음 리더가 된다.

그 새 리더는 다를 거라 국민들은 기대한다. 그런데 그 어려운 상황에서, 특히 한국과 같이 권력의 힘이 무서운 상황에서 굴하지 않고 저항하는 사람은 어떤 성향의 사람일까? 과연 타협하고 절충하고 유연한 사람일까. 그런 사람이 딱 한 번, 국민들이 원하는 그 상황에서만 평생 처음으로 권력에 대차게 대들었을까. 그런 불굴의 성향이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되면 그다음에 일어날 일은 심리학 연구 결과와 같다고 보면 된다.

더 비극적인 일은 한국인이 그 주체성으로 인해 그 불통에 더 미치고 펄쩍 뛰게 된다는 점이다. 반복되는 역사에는 다 (심리학적) 이유가 있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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