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6 (수)

[ET시론]대한민국 히든 포텐셜, 스타트업 노벨상에 도전하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전자신문

목승환 서울대기술지주 대표


최근 다녀온 미국 출장에서 필자의 출장 필수품인 신문과 주간지, 서적 등 오프라인 인쇄물과 넷플릭스 다운로드를 선정하며 '흑백요리사'를 알게 됐다. '모수'의 안성재 셰프의 등장과 인지도가 뛰어난 백색 요리사, 실력 있는 재야 흑백요리사의 대비된 대결은 매우 흥미로워 보였다. 미국에 도착해서 일정을 소화한 후 흑백요리사 시리즈를 보기 위해 넷플릭스를 접속했다. 해당 시리즈가 국내, 비영어권 순위 뿐 아니라 미국 내 넷플릭스 순위에서도 10위권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에드워드 리 같은 미국 내 인지도가 있는 셰프가 나오지만 한국 요리사들이 경연을 펼치는 흑백요리사를 미국인들끼리 보고 있다는 말인가? 비단 '오징어게임'과 '기생충' 'BTS' '블랙핑크' 등에서 촉발된 K콘텐츠에 대한 인기뿐만 아니라 출장길에 접한 미국 '트레이드조' 정중앙에 위치한 '롯데칠성 순하리' 한국 김에 대한 인기를 보면서 이제 한국의 인기에 대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듯 하다.

이제 그 수준을 뛰어 넘어 한강 작가의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이자 우리나라 두 번째 노벨상이라는 쾌거를 들었다. 평소 한강의 작품이 세계적 보편성에 근거하기 보다 한국인의 특이성과 약간의 불편함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기에 한국이 세계의 보편성과 흐름을 리드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듯 하다. 더 놀라온 것은 이러한 흐름이 너무나 짧은 순간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기성세대 기억에 있는 1970년대 후반 대한민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가 고작 1000달러였던 국가였다. 이제는 3만달러을 뛰어 넘어 3만달러 중반대(2023년 1인당 GDP 3만4469달러)를 기록한 나라가 돼 4만달러를 목전에 두고 있다. 절대 따라 잡을 수 없을 것으로 보였던 일본과 1인당 GDP에서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경이롭게 잘 해왔고 50년 넘는 기간 동안 한국보다 혁신적 발전을 거둔 나라는 유일무이하다. 경제뿐 아니라 앞서 이야기한 문화적 측면에서도 세계적 수준의 국가가 된 우리는 막연히 풍요로움을 즐기고 행복하면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감이 생긴다.

전자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불편한 현실은 조금 다르다. 이렇게 좋은 증거들이 많음에도 대내외적 상황이 녹록지 않다. 그동안의 혁신과 발전을 뛰어 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각종 신호를 받고 있다. 글로벌 경제상황에서 경제적 문제를 겪는 선진국 중에서 많은 이들이 독일을 언급하고 있다. 한때 혁신과 유럽을 대표하는 선진국이며 경제규모 세계 3위의 독일이 성장엔진이 꺼지고 있다는 혹평을 듣고 있다. 경제 지표 측면에서 OECD 올해 전분기 대비 2분기 경제상장률이 일본 0.8%, 미국 0.7%, 심지어 영국 마저 0.6%인 상황에서 독일은 무려 -0.1%이다. 해당 분기뿐만 아니라 최근 흐름이 좋지 않음은 더욱 좋지 않은 신호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아날로그 세계가 디지털화하는 급변기에서 독일이 강점을 가진 내연기관과 가전제품 산업은 적응하지 못하고 미국과 중국에 산업 주도권을 내줬다”고 지적했다. 노동인구의 하락과 첨단 산업에 대한 투자가 뒤쳐지면서 기존 제조업 분야에서 혁신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세계 10위권 내 경제 규모 국가 중에서 독일보다 더 좋지 않은 경제성장률인 -0.2%를 기록한 나라가 있으니 바로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부분은 독일과 유사한 점을 지니고 있다. 그 점이 지금까지 우리의 성공을 견인해 주었으나 이제는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대기업 제조업 위주로 편성된 산업 구조를 재편하지 못하면 독일이 겪는 어려움, 아니 그 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에서 개발도상국을 거쳐 선진국으로 나아가고 있으나 우리는 완벽한 궤도에 오르지 않았다. 끊임없이 시험 받고 고비를 넘겨야만 한다. 즉, 현재의 성과에 도취돼선 안되며 한걸음 더 미래로 나아가야만 한다. 상 받기와 평가하기를 좋아하는 우리에게 노벨상은 항상 정복해야만 하는 과제였다. 매년 이맘때 언론에서는 한국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 언급해왔다. 기적에 가까운 한강 작가의 경이로운 노벨문학상 외에 과학 관련 노벨상에 대해 지속적 관심과 언급을 해 왔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이웃 나라 일본, 심지어 중국 조차 해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전자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올해 과학 분야 노벨상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매우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올해 노벨화학상은 전통적 대학과 연구소의 연구자가 아닌 단백질 3차원 구조와 기능을 예측하는 인공지능(AI) '알파폴드'를 개발한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와 존 점퍼 수석연구원이 받았다. 알파폴드는 단백질 구조 예측 정확도 90%를 달성해 생물학의 난제를 푸는 토대를 마련했다. 높은 학문적 성과가 스타트업 혁신과 연결된 사례다. 10년 전으로 돌아가보면 구글이 2014년 딥마인드를 인수한 이후 2019년까지 딥마인드가 구글에 갚아야 할 부채 원금과 이자는 무려 11억파운드(1조7600억원)에 달할 정도 돈 먹는 하마였다. 그러나 구글은 혁신을 멈추지 않았다. 흔들림 없이 혁신을 진행했기에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세상이 나아가게 되었다.

세계 최고 거인이 된 구글, 애플, 아마존, 메타, 엔비디아 등은 혁신 스타트업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스타트업 혁신 생태계를 갖춘 선진국, 특히 실리콘밸리 등을 위시로 생태계를 형성한 미국이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패러다임 변화가 연구를 주도하고 경제를 만들어 내며 우리의 삶을 변화 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우리의 스타트업들은 잘 해 내고 있는가? 선진국을 따라 잡고 뛰어 넘기 위해서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더욱 발전 시키고 수많은 유니콘 기업을 만들어 내야만 한다. 2023년 기준 세계 유니콘 기업 수가 2.7배(449개→1209개) 늘어나는 동안 한국 유니콘 기업 수는 1.4배(10개→14개) 증가하는데 그쳤다. 전 세계 포브스 2000개 기업 중 한국 기업이 61개로 3% 정도 차지하는 것을 보면 그 차이는 극명하다. 역동적 발전을 해 온 우리가 왜 혁신은 미흡해 보이는 것일까? 이는 아직 우리가 자생적 스타트업 생태계를 제대로 구축하고 있지 못하고 있고, 초기 스타트업을 유망 글로벌 스타트업으로 육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나로만 해결되는 부분은 아니다. 정부와 민간에서 많은 정성을 보여야 하며, 대학과 연구기관에서도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스타트업 혁신이 양질의 투자자와 대기업의 협조가 이루어진 민간에서 양태됐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분에서 여러 플레이어들의 행동이 융합 동작해야만 그 생태계가 형성된다. 한국이 진행하는 것처럼 직접 연구개발(R&D) 예산을 넣기도 하고 세제 혜택을 주기도 하며 지자체와 상생 방안을 보이기도 한다. 실리콘밸리도 스탠퍼드대를 위시한 대학과 지역 인프라가 있기에 거대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성할 수 있다.

특히 국가의 역할은 스타트업에 온갖 규제의 틀을 적용하고 감시하는 것이 아니다. 규제라는 개념 없이 무조건 실행해 볼 수 있는 창업의 장을 만들어 주고 문제가 있다면 발생한 이후에 확인하고 엄벌하는 네가티브 룰의 적용이 절실하다. 한국은 초기 스타트업에 여러 지원을 해 주고 있으며 초기 단계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나 어느 정도 단계가 지난 후 성장 과정에서는 기존 틀을 깨지 못하는 수많은 규제로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필자가 투자한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다수 접하고 있다.

그것을 해 내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히든 포텐셜을 깨어 내야만 한다. 필자가 좋아하는 '오리지널스' '기브 앤 테이크'의 애덤 그랜트 교수의 최신작 '히든 포텐셜'을 미국 출장길에서 읽으며 수많은 생각에 잠겼다. 애덤 그랜트 교수는 히든 포텐셜에서 성공을 해낸 이들이 기존 관행을 답습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학문적으로 증명해 냈다. 불편해도 항상 새롭게 만들어 내고 바뀔 수 있는 용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엘리트주의와 익숙함에서 용기있게 결별하고 불편함에 다가갈 수 있을 때, 우리는 혁신할 수 있다. 관리하고 감독하던 기성 세대 성공 방식을 깨어내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용해야만 지속 가능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고 성장 가능성 높은 스타트업을 육성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다음 도약을 위해서는 스타트업을 통한 시대적 혁신을 이뤄 내야 한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기업들을 성장시키기 위해 우리가 익숙한 수많은 규제들과 감시를 깨어 내어 스타트업의 아이디어와 산업 혁신이 다음 한국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도록 해 보자.

마지막으로 경이로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한다. 나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그의 초기단편집 '여수의 사랑'에 실린 “어디로 가든, 나는 그곳으로 가는 거예요”라던 명문장처럼 우리도 그 곳으로 꼭 가보자.

목승환 서울대기술지주 대표 moksh@snu.ac.kr

〈필자〉서울대에서 재료공학과 경제학을 전공, SK커뮤니케이션에서 사업전략과 신사업을 경험하고 이후 10여년 동안 스타트업 창업과 자금회수 경험을 바탕으로 투자자에 입문했다. 공공 영역에 스타트업 생태계 기여가 필요하다는 결심으로 모교 투자사인 서울대기술지주에 입사해 2020년 내부 승진 대표직을 맡은 후에 연임하고 있다. 2017년 서울대STH 제1호를 시작으로 모태펀드, 성장금융, 지자체와 외부 출자자가 연계된 펀드와 성과 공유 기부형 펀드를 비롯한 총 12개 1000억원 규모 펀드를 운용하며 다양한 분야의 혁신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고 있다.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