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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최씨네 리뷰] 허진호 감독 '보통의 가족',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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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남긴 말이다. 장소, 날씨, 몸 상태 등 하나하나가 모여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다. 영화도 마찬가지. 그날의 기분, 나의 경험이 영화의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최씨네 리뷰'는 필자의 경험과 시각을 녹여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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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통의 가족' 스틸컷 [사진=(주)하이브미디어코프, (주)마인드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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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었어요."

허진호 감독이 영화 '보통의 가족'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런 이야기를 했다. 영화 '보통의 가족'이 기존 연출작들과 다른 질감을 가져 "내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영화를 관람한 입장으로 대번에 "아니던데요?"라고 답해버렸다.

영화 '보통의 가족'은 서스펜스 드라마의 외피와 스릴러적인 무드를 가지고 있어 허 감독답지 않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인물의 내면 그리고 세밀하게 얽힌 작은 단위의 감정들이 발견된다. 인물의 내면과 솔직함을 담백하게 짚어내고 결이 다른 아름다운 풍광과 색채로 이미지적 충돌을 일으키는 건 허 감독의 인장이나 다름없었다. 허진호는 역시 허진호. 새로운 장르에서도 그의 장기와 인장은 빛난다.

재벌 2세(유수빈 분)의 보복 운전 사고로 세간이 떠들썩해진다. 스포츠카를 몰던 젊은 남자는 홧김에 아버지와 어린 딸을 치고 만다. 이 사고로 아버지가 죽고 어린 딸마저 의식 불명에 빠지자 온·오프라인이 발칵 뒤집어진다.

재완(설경구 분), 재규(장동건 분) 형제는 각각 다른 입장으로 사고를 마주하게 된다.

변호사인 형 재완은 재벌 2세의 보복 운전 사건을 맡는다. 돈을 위해서라면 살인자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재완은 피해자 가족이 수술 자금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걸 알아내 합의를 끌어내려 한다.

반면 소아과 의사인 동생 재규는 피해자 가족을 도우려 애쓴다. 병원비가 밀렸다는 원무의 원성에도 "아이를 살리는 게 우선"이라고 받아친다.

너무나 다른 신념과 가치관을 가진 두 형제. 특히 재규와 그의 아내 연경(김희애 분)은 재완 내외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아들 시호의 교육부터 어머니의 간병, 해외 봉사와 자선 사업 등으로 많은 이에게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는 두 사람은 금전적으로 재규 내외에게 밀릴지언정 도덕적으로는 우월하다고 느낀다.

한편 젊고 아름다운 수진(수현 분)은 재완과 결혼했지만 좀처럼 가족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재규 내외와 재완의 딸 혜윤은 수진을 은근하게 무시하고 비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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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통의 가족' 스틸컷 [사진=(주)하이브미디어코프, (주)마인드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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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시기하고 질투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사이좋은 여느 가족인 재완과 재규. 그러나 이들의 평범한 일상은 아이들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로 인해 무너지고 만다. 각자의 가치관과 신념, 도덕성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네 명의 부모는 아이들의 범죄 사실을 덮을지, 세상에 드러낼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영화는 네덜란드 작가 헤르만 코흐의 소설 '더 디너'를 원작으로 한다. 전 세계 누적 100만 부 판매, 55개국 판권 계약이 된 인기작으로 벌써 4번째 영화로 제작됐다.

허 감독은 강렬한 이야기와 치열한 심리 묘사가 담긴 문장들을 영상으로 구현해 냈다. 원작이 가진 인물 관계성이나 서스펜스적인 구성을 살리면서도 한국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시의적절한 사회 문제를 내놓고 질문을 던진다. '내 아이'가 저지른 '덮을 수 있는' 범죄에 관한 선택지들을 톺아보고 갈등하게끔 만드는 상황은 앞서 보여준 폭력들보다 더욱 끔찍하고 잔혹하다.

오프닝 시퀀스의 얼얼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재완·재규 형제를 통해 가족들의 불균형과 기묘한 관계성을 짚어낸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 불균형과 모순이 '가장 보통의 가족'답다는 점이다. 허 감독은 이 지점들을 공들여 톺아낸 뒤 관객들을 속절없이 빠져들게끔 만든다.

이같은 인물들의 부조리함과 관계들을 담백하게 읽어내고 촘촘하게 엮어내는 건 허 감독의 장기다.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 '인간실격'을 통해 보여주었듯 인물들의 가장 연약한 속내를 드러내게끔 만들고 작은 단서들로 결정적 순간과 감정을 목격하게끔 만든다. 이 섬세한 감정 교류는 로맨스가 아닌 서스펜스 드라마에서도 진가를 발휘한다.

영화는 4명의 부모를 앞세워 현대 사회의 문제와 부조리함을 그려낸다. 허 감독이 "부조리극 같은 인상"이라고 자평한 식사 장면들은 영화의 백미. 원작에서도 공들여 묘사되었던 장면인 만큼 장르적인 요소들로 해당 장면들에서 감정의 급류를 보여준다. 평범한 가족 모임과 사건을 인지하게 된 뒤의 갈등, 회유, 결정을 번복하는 모습에서 인물들의 '진짜' 얼굴을 보여준다. 때로는 우습게, 때로는 끔찍하게 그려지는 순간들이 관객들을 몰입하도록 만든다. 불편한 공기나 끓어오르는 감정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데 터져 나오는 웃음 뒤 씁쓸함이 영화 '보통의 가족', 그 자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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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통의 가족' 스틸컷 [사진=(주)하이브미디어코프, (주)마인드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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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락선 촬영 감독과 조성우 음악 감독도 허 감독의 섬세함에 힘을 보탠다. 위에서 내려다보듯 촬영하는 '부감 숏'과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을 담는 '클로즈업 숏'을 통해 인물들을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보게 하고, 아름다우면서 혼란함을 담은 음악으로 극적인 감정을 끌어올린다. 특히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부터 '덕혜옹주'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 이르기까지 허 감독과 오래 호흡을 맞춘 조 음악 감독은 허 감독이 의도마다 현악기와 피아노 선율을 배치하며 몰입감을 배가 시켰다.

배우들의 호연도 인상 깊다. 재완 역을 맡은 설경구는 믿음직하게 극을 이끌고, 재규 역을 맡은 장동건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생활감 가득한 면면들을 드러낸다. 차곡차곡 쌓은 감정들을 폭발 시키고 상황을 뒤집는 힘이 강력하다. 연경을 연기한 김희애의 연기에는 내공이 엿보인다. 위선적인, 본능적인 감정들을 다른 결들로 만들어냈다. 지수 역을 맡은 수현은 인물들의 균열을 가리키고 정곡을 찌르며 흡인력을 높인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보통의 가족'은 제48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공식 초청, 제44회 판타스포르토 국제영화제, 제39회 몽스 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 등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인다. 16일 극장 개봉. 러닝타임은 109분이며 관람 등급은 15세 이상이다.

아주경제=최송희 기자 alfie312@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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