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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헌재 스스로 헌재법 정지시켰다…용단? 편의주의? 학계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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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지난 14일 ‘재판관 7명 이상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23조 1항)는 헌재법 효력을 정지시킨 것을 두고 학계 의견이 분분하다. 전체 9명 재판관 중 이종석 헌재소장 등 재판관 3명이 오는 17일 후임 없이 퇴임하면서 벌어질 ‘헌재 마비’는 일단 막았지만 그 방법론이 적절했는지를 두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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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전경.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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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퇴임할 재판관 후임 3명은 모두 국회 추천 몫인데, 여야가 각각 후임자를 몇 명 추천할지 다투다 결국 공백이 가시화했다. 이에 탄핵심판을 받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재판관 공백으로 심판 절차가 정지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가처분 신청을 냈다. 헌재는 “사건을 심리조차 할 수 없다면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며 이를 만장일치로 받아들였다.



“헌재, 코마 직전 용단”…“1971년 대법원 결정 유사”



헌재가 스스로 헌재법 조항을 정지시킨 이례적인 결정에 학계에선 “코마(혼수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용기 있는 결단”이란 평가가 나왔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헌재는 탄핵심판뿐 아니라 위헌·권한쟁의심판 등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관련한 사건을 다룬다”며 “이 모든 게 올스톱되는 상황을 이번 결정으로써 피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도 제도적 미비점을 언급하며 “이번 결정은 헌재로서도 불가피한 선택이자,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헌재가 가처분 인용 결정문에서 “재판관 직무대행 제도와 같은 제도적 보완 장치는 전무하고 임기 만료로 인한 퇴임은 예상되는 것임에도 재판관 공석의 문제가 반복 발생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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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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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1971년 대법원의 국가배상법 위헌 결정 과정과 비유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당시 군인 등에 대한 이중배상을 금지한 국가배상법 2조 1항에 대한 위헌 논란이 일자, 박정희 정부는 위헌 결정에 필요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정족수를 ‘대법관 3분의 2 이상 출석에 과반 찬성’에서 ‘대법관 3분의 2 이상 출석에 3분의 2 찬성’으로 법원조직법을 개정했다.

이에 당시 대법원은 이를 위헌이라고 판단하고 국가배상법 2조 1항도 위헌 결정했다. 1971년은 헌재 설립 전으로 위헌 결정을 대법원이 할 때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당시 대법원은 박정희 정부가 개정한 법원조직법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법치주의를 지켰다”며 “이번 헌재 결정은 국회의 권한 오남용에 대한 경고”라고 말했다.



“3부 추천 구조 부정”…“6인 체제 헌재 결정도 우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이번 헌재 결정은 3부가 추천한 재판관이 골고루 참여해 심리하라는 기본 구조를 부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헌법은 재판관 9명을 대통령·대법원장·국회가 각 3명씩 지명하도록 하는데, 한 교수는 “헌재법이 7인 이상으로 심리하도록 한 건 헌법의 3·3·3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한 교수는 “법의 차원에서 헌법보다 더 큰 가치는 없다”며 “헌재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헌재 기능이 차질을 빚는다 하더라도 함부로 조직이나 절차에 관한 규정을 바꾸는 것은 권위 유지에 도움되지 않는다. 더구나 가처분 형태로 바꾼 것은 참 잘못된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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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관 9명이 참석한 헌법재판소 심리 장면. 사진은 지난해 10월 26일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개정안(노란봉투법)과 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방송법 개정안)의 권한쟁의심판 사건에 대해 절차상 문제가 없다며 각각 기각 결정을 내린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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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파견 경험이 있는 판사 출신 변호사도 “헌재의 가처분 신청 인용으로 해당 법률 조항은 무력화했다”며 “입법으로 해결할 문제를 헌재가 편의주의 방식으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헌재 결정 직후 더불어민주당이 “헌재 스스로 입법행위에 준하는 결정을 했다”(윤종군 원내대변인)며 우려를 표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번 결정으로 사상 첫 ‘6인 재판관 체제’ 의결이 가능해진 점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헌재법은 심판정족수를 ‘6명 이상 찬성’(23조 2항)으로 하기 때문에 만장일치만 이뤄지면 이론상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있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로스쿨 교수는 “6명이 심리해서 6명이 찬성하는 것과 9명 전원합의체에서 6명 이상이 찬성하는 것에 대한 규범력은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원초적 책임은 국회”…차제에 법 개정도 신경써야



학자들은 찬반을 떠나 일차적 책임과 비판 대상은 국회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장영수 교수는 “국회가 재판관 추천을 미루면서 헌재 기능을 막으려 한 것”이라며 “권위주의 정부가 국회를 해산시켜 정부 통제를 막았듯, 이번 사건도 삼권 분립에 반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한상희 교수도 “원초적인 잘못은 국회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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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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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회에 국회가 헌재법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장 교수는 “독일은 후임자 임명이 늦어지면 임기 만료된 재판관이 후임 재판관 임명 때까지 계속 직을 맡고 오스트리아는 재판관 사고 궐위를 대비해 예비재판관 제도를 운용한다”며 “국회가 제도적 보완책에 대해서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영ㆍ최서인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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