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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글로벌 현장을 가다/임우선]美 선거판 뒤흔드는 기후 위기… “집 매매 끊기고 보험료 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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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재앙 위기감 커지는 미국

美 허리케인, 폭염, 산불로 ‘신음’… 주택 보험료 연 2000만원에도 상승 우려

일부 보험사, 기후 재난 지역서 철수… 젊고 진보 성향일수록 기후 대책 중시

최소 300만 명 정전 등으로 고통… 11월 5월 대선일 투표 여부도 불확실

동아일보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브라이언트파크에 설치된 물방울 모양 구조물. 주요 산업의 물 사용 현황과 수자원 부족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문구들이 적혀 있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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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한 대를 만들려면 3190갤런(약 1만2000L)의 물이 필요하다.’ ‘검색업체들은 2022년 한 해 동안 56억 갤런의 물을 사용했다.’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브라이언트파크를 찾았다. 공원 한가운데에 물방울을 본뜬 거대한 구조물이 보였다. 각각의 물방울에는 물 부족 등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이 문구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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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유엔총회 기간에 펼쳐진 ‘뉴욕기후주간’ 행사에서 시민들이 각국 정부가 기후 위기 대응에 동참해야 한다며 행진하고 있다. 기후전문 비영리단체 ‘클라이밋솔루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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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뉴욕에서는 제79차 유엔총회가 한창이었다. 매년 열리는 총회의 세부 일정 ‘뉴욕기후주간’을 맞아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다양한 행사도 열렸다. 특히 올해 세계 곳곳에서 전례 없는 폭염, 산불, 태풍, 폭우 등이 발생해 뉴욕기후주간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는 평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우리는 기후 ‘붕괴’에 처해 있다”며 “고온, 화재, 가뭄, 대홍수 등은 자연재해가 아닌 인간의 재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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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뉴욕 특파원


최근 미국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기상 관련 보도가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등 서부 일대에서는 기록적 폭염과 산불이 계속됐고, 남동부 플로리다주 등에는 허리케인 ‘헐린’과 ‘밀턴’이 잇따라 몰아쳤다.

넓은 영토를 가진 미국인 만큼 미국인이 체감하는 기후 재앙의 형태는 다양하다. 또 위기감도 크다. 이 같은 기후 위기가 다음 달 5일 대선은 물론이고 같은 날 치러지는 연방 상·하원 선거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 美 곳곳서 ‘기상 재앙’

플로리다주에서는 지난달 말 4등급 허리케인 헐린으로 최소 200명 이상이 숨졌다. 이 상흔이 가시기도 전에 이달 더 강력한 5등급 허리케인 밀턴을 맞았다. 잇따른 허리케인에 주 정부는 ‘도망치지 않으면 죽는다’며 주민들에게 의무 대피 명령을 내렸다. 서울 인구의 약 3분의 2에 해당하는 600만 명이 차를 타고 살던 곳을 벗어났다. 전쟁 대피를 방불케 하는 끝없는 차량의 행렬이 미 전역에 방영됐다.

과학자들은 밀턴이 불과 하루 만에 1등급에서 5등급 허리케인으로 진화하는 등 ‘믿을 수 없이 폭발적인 방식’으로 기후 재앙이 진화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기후전문 비영리단체 ‘클라이밋센트럴’은 “연이은 허리케인이 기록적인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발생했다”며 “이런 해수면 온도가 조성될 가능성이 이전에 비해 최대 800배 더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올 들어 미국에서 발생한 허리케인의 수가 2021∼2023년 3년 치를 합친 것보다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비슷한 시기 캘리포니아주 남부에서는 한 달 넘게 타오르던 산불로 인해 수천 명의 주민에게 대피령이 내려졌다. 일부 과학자는 보통 여름이 끝나면 대형 산불이 사그라들기 마련인데 기후 변화로 이런 경향성이 바뀌었다며 가을철에 되살아난 산불을 설명할 새로운 용어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미 전역에서는 이 같은 대형 산불이 67곳에서 발생했다. 과거에는 낮에 불타오르던 산불이 밤에 기온이 내려가면서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최근 미 서부에서는 밤 기온이 더 높이 올라가면서 산불 진화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페이 존스턴 공중보건의는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화재 자체보다 더 큰 문제가 대기오염”이라며 “화재 미세먼지는 목, 폐, 뇌 등에 스며들 수 있고 남녀노소를 포함한 대규모 커뮤니티가 피해를 본다”고 지적했다. 산불 연기가 조산아 증가, 신생아의 체중 감소, 심장 및 폐 질환 등과 직결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기후 재앙은 ‘기후 안식처(climate haven)’로 불리던 지역들까지 강타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은 언제나 좋은 날씨로 한때 ‘천국’으로 불렸다. 과거라면 5개월 동안 내릴 비가 최근 단 3일 만에 쏟아져 40명 넘게 숨지고 집, 상점, 도로가 쓸려 나갔다.

● 집 매매 끊기고 보험료 급등

반복되는 기후 재앙은 경제 위기로도 이어지고 있다. 해가 갈수록 잦아지는 허리케인으로 대피 명령과 주택 붕괴가 거듭되고 있는 플로리다주가 대표적이다.

플로리다주는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택 붐’을 겪은 지역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많은 직장에서 재택 근무가 보편화됐고, 많은 이들이 ‘햇살 가득한’ 플로리다주로 이주했다. 다른 지역보다 세금, 규제 등이 적어 아예 본사를 이 지역으로 옮긴 기업도 많았다. 2021∼2023년 플로리다주는 미 50개 주 중 인구가 빠르게 증가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최근 주민 앤서니 홈스 씨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올 초 집을 내놓고 가격을 5번이나 낮췄지만 8개월 동안 아무도 집을 보러 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허리케인 등에 따른 빈번한 대피에 지친 이들이 지역을 떠나고 싶어도 집 매매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거주하려 해도 비싼 보험료가 문제다. 툭하면 불어닥치는 허리케인, 토네이도 등으로 주택보험 가입이 꼭 필요하지만 보험사 입장에서도 잦은 주택 파손이 일어나는 지역에 다른 지역보다 비싼 보험료를 부과할 수밖에 없다. 최근 5년간 플로리다주의 보험료는 최대 400% 올랐다. 파머스 보험은 “플로리다주에서는 더 이상 사업이 불가능하다”며 아예 이 지역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산불이 반복되는 캘리포니아주 역시 보험료 인상 속도가 가파르다. 일부 지역의 주택 보험료는 연간 1만5000달러(약 2000만 원) 이상이다. 몇몇 보험사는 “캘리포니아주의 일부 지역은 재난 위험이 너무 커 감당할 수 없다”며 아예 시장을 포기하고 있다.

● 대선의 주요 변수


기후 재앙은 약 20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과 상·하원 선거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론조사회사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중 7명은 기후 변화를 “중대한 위협”으로 여긴다. 특히 젊고, 진보 성향이며, 여성일수록 기후 정책 관련 의제를 투표의 주요 고려 사항으로 여긴다. 이들 중 일부는 “기후 변화는 사기”라고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을 찍을 수 없다고 외친다.

기후 변화를 우려하는 정치단체 ‘전미기후투표’ 정치행동위원회(PAC)는 이번 대선 및 상·하원 선거에서 기후 대응을 우선하는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일종의 ‘채점표’까지 만들었다. 후보자가 화석연료에 어떤 인식을 보였는지, 기후 대응 관련 입법을 얼마나 했는지, 기후 변화 우려 성명을 얼마나 냈는지, 탄소세 부과 등에 어떤 입장인지 등을 점수화해 해당 지역의 1등부터 꼴찌까지 명단을 보여주는 식이다. 블룸버그통신도 기후 변화로 집과 사업을 잃고, 보험료가 치솟은 사람들에게 기후 변화는 곧 경제 위기의 동의어가 됐다고 진단했다.

당장 기후 재앙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다음 달 5일 선거에서 제대로 투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당국 또한 집을 떠나 대피소를 전전하는 상당수 주민의 투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11일 AP통신은 최소 300만 명이 아직도 정전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이들의 투표가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임우선 뉴욕 특파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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