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경기부양에 나섰다. 금년 5% 성장을 달성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내수 지표들이 가라앉고 있다. 소비지표인 소매판매증가율은 하반기에 2%대에 머물렀다. 투자지표인 고정자산투자증가율도 8월까지 3.4%를 기록하며 둔화 중이다. 그중 민간기업들만 보면 작년(-0.4%)에 이어 2년 연속 마이너스(8월까지 -0.2%)다.
그런데 중국인의 가처분소득은 금년 1분기 6.1%, 2분기 5.3% 늘었다. 소득은 꽤 늘었는데 돈을 안 쓴다. 부동산과 증시가 3년째 내리막이기 때문이다. 집값이 금년에만 8.2%나 빠졌다(7월 기준). 재산이 줄어드니 소비도 줄이는 이른바 부(負) 자산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민간투자가 감소한 데는 3년 만에 투자총액이 반 토막이 난 부동산 시장 침체 영향이 크다. 대신 정부는 제조업 투자를 장려하지만, 생산자물가가 24개월 연속 하락하는 장기 디플레이션 속에서 기업이 선뜻 투자와 생산을 늘리기도 어렵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경기부양책도 영 뜨뜻미지근하다. 금리를 내리고 주택구매 규제도 완화하고 주가부양 자금도 풀었으나, 내수 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인 부동산 분야에 대해서는 여전히 "투자 증가를 엄격하게 통제한다"는 험한 입장 그대로다. 시장의 기대가 큰 재정확대에 대해서도 운만 띄우고 확실한 약속이 없다. 10조위안쯤 늘려달라는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9월 말, 10월 8일, 10월 12일 같은 내용의 부양책을 여러 번 재포장해서 발표하면서 마치 이참에 주가나 좀 띄워 보자는 행태마저 보인다. 잠시 반짝했던 중국 증시는 벌써 오락가락한다.
사실 중국인들의 관심은 부양책 내용이 아니다. 진짜 궁금한 것은 거시적인 리스크 예방, 미시적인 체질 개선, 강력한 제조업 육성을 10년 내내 강조하면서 단기적 경기부양에는 극도로 부정적인 인식을 보여온 시진핑 정부가 과연 이번에 그 정책기조를 바꿀 것인가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이야말로 그 전환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중국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경제문제를 넘어선 예민한 정치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상하이방, 공청단파, 태자당 등의 이름과 함께 예전 중국의 파벌정치를 기억할 것이다. 시진핑 집권 후 상하이방과 공청단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데 이들이 경제적으로 대표하던 것이 바로 중국의 성장우선주의와 개발주의였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부패와 유착의 혐의들은 나중에 이들이 몰락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이들을 무력화하고 집권한 시진핑은 지난 10년간 과거의 성장우선주의가 낳은 부동산 버블과 방만해진 지방정부를 다잡으며 자신의 정책적·정치적 정당성을 구축했다. 그가 단기 성장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며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고 지방재정이 부실화될 때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데는 다 그런 정치적 내막과 배경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내수시장의 장기침체와 경기부양 정책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줄다리기와 동학(動學)은, 저간의 사연을 다 알고 있는 중국인들이 볼 때 단순한 경제 이슈가 아니다. 예민하기 짝이 없는 정치적 사안이다. 과거 파벌 정치는 사라졌지만, 성장이냐 안정이냐는 경제 기조를 놓고 한동안 사라졌던 정치적 동학이 다시 작동하고 있다. 아슬아슬하다. 관료들은 부양책 앞에서 마냥 머뭇거린다. 정책기조를 전환하지 않으면서, 전환된 것과 같은 효과를 내라는 것이 이들에게 허락된 미션이다.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시장은 제발 이번에 시진핑이 정치적 체면을 잃지 않고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는 묘수를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시진핑을 응원해서가 아니다. 그게 시장과 시진핑이 함께 윈윈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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