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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경제 우등생 이 나라에 ‘감원’ 칼바람이 불고 있는 이유 [매경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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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비 부담 커진 獨제조업
감원 바람에 국가경제 휘청

韓 제조업은 해외탈출 러시
‘노동시장 유연화’ 서둘러야


매일경제

폭스바겐 노동자들이 시위를 하고 있는 공장 근처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로이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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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자동차 그룹인 폭스바겐 공장이 위치한 독일 산업도시 하노버는 요즘 노동자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경영진이 “차량 생산과 부품 공장의 폐쇄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의 메일을 직원들에게 보낸 후부터다. 공장 폐쇄가 현실화하면 회사 설립 후 87년 만에 처음이다. 노동단체는 이에 반발하며 12월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독일은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 ‘제조업 왕좌’로 군림해왔다. 장인을 키우는 기술 교육과 독창적인 산업디자인, 대·중소기업의 상생, 공장 자동화 등은 한국이 배우고 따라야 할 모델이었다. 그런 독일 제조업이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자 독일 경제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다.

도대체 독일 제조업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반도체·자동차 등 제조업 수출 비중이 절대적인 한국도 남의 일이 아니다. 닥쳐올 미래에 대비하려면 이제 독일 제조업의 그림자도 배워야 한다.

독일의 제조업 감원 바람은 업종 구분 없이 진행되고 있다. 폭스바겐은 독일 내 6개 공장에서 12만여 명이 일하고 있는데, 한 공장만 폐쇄돼도 2만명가량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사측이 구조조정에 내몰린 것은 독일 차 판매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5년 새 독일 차 생산량은 25% 감소했다. 특히 전기차는 지난해 독일에서 400만대 팔렸는데 이 중 독일 차는 4분의 1에 그쳤다. 중국 저가 전기차의 공략이 그만큼 강력했다. 자동차 판매가 급감하자 연 매출 414억유로(약 61조원)에 달하는 부품업체 콘티넨탈도 7150개 일자리를 줄일 계획이며, 티센크루프 등 철강업계도 뒤따르고 있다.

독일을 대표하는 제약·바이오 업종도 사정은 비슷하다. 바이엘은 올 상반기에만 일자리 3200개를 줄였다. ‘관료주의 타파’를 내세워 일부 팀을 해체하고 임원 수도 절반으로 줄였다. 지난해 2600개 일자리 감축 계획을 밝힌 BASF는 생산기지 해외 이전을 위해 독일 내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이 밖에 가전업체 밀레는 전 직원 2만3000명 중 10% 이상을 감원할 계획이며, 공구업체 보쉬도 구조조정에 나설 예정이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는 독일 제조 대기업이 올해 5만5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감축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대기업의 공장 폐쇄와 사업 부문 철수는 협력업체의 줄폐업으로 이어져 제조업 인력 구조조정은 그보다 몇 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독일 정부는 올해(-0.2%)도 지난해(-0.3%)에 이어 마이너스 성장을 전망했다. 주요 7개국(G7)은 물론 유럽연합(EU)에서도 최하위 경제 성적표다. 독일 제조업이 이 지경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값싼 러시아산 가스 공급 어려움과 중국 제품과의 경쟁, 수요 감소, 환경(CO2) 규제, 인력 고령화, 제조업의 디지털화 전환 실패, 관료주의 등 다양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제조업계가 꼽는 첫 번째 원인은 ‘경직된 고비용’ 구조다. 독일 제조업의 고비용은 심각한 수준이다. 시간당 평균 임금이 62유로(2023년 기준)로 세계에서 단연 높다. 유럽에서 스페인은 29유로, 체코는 21유로, 루마니아는 12유로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독일 노동자의 근무 시간은 주당 평균 35.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적다.

한국 제조업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해외로 나간 기업 2816곳 중 상당수가 제조업종이라고 한다. 인건비 부담과 경직적인 주 52시간제로 ‘제조업 엑소더스(대탈출)’는 이미 한참 전에 시작됐다. 제조업이 해외로 옮겨가면 국내 일자리 감소뿐만 아니라 지역 소멸 등 여러 가지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오기 전에 노동시장을 유연화해 제조업의 해외 유출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이제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매일경제

서찬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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