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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50 대 50” 팽팽한 펜실베이니아 민심 어디로[미국 대선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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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대 50’이에요. 물론 내 주변엔 민주당 지지자가 많지만 조금만 둘러봐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노샘프턴 카운티의 행정 중심지 이스턴에서 지난 10일(현지시간) 만난 인발(28)에게 대선과 관련한 동네 분위기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공화당 대선 후보)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민주당 후보)을 지지하는 여론이 거의 ‘반반’으로 맞서고 있다는 의미였다.

노샘프턴은 미 대선 유권자 표심의 향방을 짐작하기에 안성맞춤인 ‘벨웨더(지표)’ 카운티로 불린다. 1920년 이후 역대 대선에서 세 차례(1968·2000·2004년)만 빼고 족집게처럼 승자를 맞혔기 때문이다. 11월 미 대선의 최대 격전지인 펜실베이니아에서 이런 위상을 지닌 곳은 노샘프턴과 이리 카운티 둘뿐이다. 2020년 대선 당시 노샘프턴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불과 0.7%포인트 차로 트럼프 후보를 제쳤을 정도로 양당 지지세는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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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미국 대선 격전지 펜실베이니아주 노샘프턴카운티 이스턴의 한 주택가에서 마당에 ‘해리스-월즈’ 지지 푯말을 꽂아놓은 집의 바로 옆집에 ‘트럼프’ 지지 푯말이 꽂혀 있다. 이스턴(펜실베이니아) | 김유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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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둘러본 노샘프턴의 민심도 팽팽하게 갈라져 있는 듯했다. 한 블록 주택가는 물론 심지어 이웃집끼리도 ‘해리스-월즈’, ‘트럼프-밴스’ 푯말을 각기 내건 풍경을 흔하게 접했다.

유대계 여성으로 디자이너로 일하는 인발은 “해리스가 당선되면 환경 정의, 여성과 이민자 인권, 전쟁 종식 등의 가치들을 확장하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해리스가 가자지구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폭주를 멈출 최적의 인물은 아닐 수 있지만 그래도 다른 옵션(트럼프)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그런데 인발과 대화를 마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만난 선박수리공 코리(72)는 “민주당의 워크(woke·진보 의제 통칭)와 정치적 올바름(PC) 타령에 진절머리가 난다. 이번에도 트럼프를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발이 지지하는 진보적 가치에 대한 반감이 트럼프 후보 지지층을 묶는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지난 9~10일 펜실베이니아에서 각기 정당 지지세가 다른 노샘프턴(경합), 라카와나(민주 강세), 루체른(공화 강세) 카운티 세 곳에서 만난 양당 지지자들도 이슈별로 첨예한 입장을 드러냈다.

트럼프 후보 지지자들은 최대 현안인 경제·이민 문제에서 “트럼프 집권기가 훨씬 나았다”는 인식을 보였다. 내년 1월 출산을 앞둔 18세 딸과 함께 바이든 대통령의 고향인 라카와나카운티 스크랜턴에서 지난 9일 열린 트럼프 후보 유세에 참석한 루시는 “지난달 집주인이 월세를 두 배 올렸고 월말에 내 은행 계좌에 남은 돈은 1달러뿐이었다. 트럼프 때는 이렇게 살 길이 막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평생 민주당원이었다가 2016년부터 공화당 지지로 돌아선 50대 존은 “이민자들이 다 범죄자는 아니지만 국경이 망가지면서 그런 이들이 숨어들어오고 있다”며 “지금은 해리스가 온건한 척하지만 당선되면 급진주의자 본색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해리스 후보 지지자들은 트럼프 후보 재집권 시 강경 이민정책, 여성 재생산권 축소, 민주주의 침해가 가속화할 것으로 우려했다. 지난달 해리스 후보가 유세를 벌인 루체른카운티의 윌크스배리에서 가발 가게를 운영하는 50대 흑인 여성 카르멘 틴슨은 “여성의 선택권 보호를 위해 해리스에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30년 전 이민을 온 틴슨은 “트럼프는 다른 인종을 아예 수용하지 않겠다는 태도인데, 세계는 특정한 누구의 소유도 아닌 자유로운 곳이다. 이민자들을 불법이라고 하기 전에 미국 내 범법자들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40대 자영업자인 리처드는 “4년 전에 경제가 좋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트럼프가 잘해서는 아니었다. 발언이나 프로젝트2025(공약집)을 볼 때 트럼프 2기는 독재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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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집회가 열린 9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서 공화당 측 선거운동 트럭이 서 있다. 스크랜턴(펜실베이니아) | 김유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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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이니아는 경합주 가운데 선거인단(19명)이 가장 많다. 백악관 입성을 위해서 놓칠 수 없는 승부처인 까닭이다. 정치데이터 업체 애드임팩트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펜실베이니아에서 양당의 광고 지출비는 민주당 1억8000만달러(약 2441억3400만원), 공화당 1억7000만달러로, 2·3위인 미시간·위스콘신을 합친 광고비보다 두 배 많았다. 실제로 지역 TV 방송에서는 끊임없이 후보 광고가 흘러나왔고 거리 벽보, 건물 옥외 광고, 도로변 대형 광고판 등 각종 정치 광고로 넘쳐났다.

지난달부터 이미 우편 방식의 사전투표(대면 우편투표도 가능)가 시작된 펜실베이니아에서는 막판 선거운동 열기도 고조되고 있다.

10일 오전 찾은 이스턴의 해리스 캠프 사무소 한쪽 벽면에는 모든 도로명이 표시된 노샘프턴 지도가 붙어 있었는데,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패배한 2016년 대선 때와 달리 대도시는 물론 소도시와 농촌 지역까지 훑는 민주당의 저인망식 선거운동 전략을 엿볼 수 있었다. 주된 유권자 그룹인 노동계층과 히스패닉계를 위한 별도의 공보물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해리스 캠프 관계자는 “투표소 앞 유권자 보호, 캔버싱(집 방문), 폰뱅킹(전화 유세), 푯말 배분 등의 업무별로 자원봉사자들을 모집 중인데 갈수록 참여가 더욱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인플레이션과 프래킹(셰일가스 시추기술인 수압파쇄법) 이슈를 중심으로 ‘정권 심판’ 정서를 공략하고 있는 트럼프 캠프는 외부 조직에 유권자 접촉 활동을 맡기고 있다. 라카와나의 공화당 ‘사전투표 행동’ 지역 총괄을 맡고 있는 켈리 스테지는 “공화당원의 유권자 등록 규모가 민주당원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왔다. 대도시에서는 민주당이 강세이지만 블루 카운티(민주당 강세 지역)나 시골에서 공화당 지지가 급등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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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노샘프턴카운티 이스턴에 위치한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선거캠프 사무실 외관. 이스턴(펜실베이니아)/김유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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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기준 선거일이 23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이들도 제법 있었다. 유권자의 4~5%로 추산되는 이들의 표심, 그리고 양당 지지자들의 실제 투표율이 결국 경합주 승패를 좌우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윌크스배리에서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40대 흑인 남성은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데 사장이 너무 오른 식품값과 월세 때문에 사업을 접는 건 아닐지 두렵다”면서 “무당파인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누가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한 비전을 보여줄지 여부”라고 말했다. 이스턴 주민인 70대 로버츠는 “미국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등 모든 나라를 돕고 있는데 정작 우리가 허리케인 피해를 입었을 때 누가 도와줬나”라며 “트럼프가 너무 싫어서 누구를 뽑을지 정하지는 못했지만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실행할 후보를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펜실베이니아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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