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민배우’ 이자벨 위페르
연극 ‘메리 스튜어트’로 첫 내한공연
“독백으로 감정 전달해 까다로워
목소리 높낮이-움직임으로 표현”
연극 ‘메리 스튜어트’에서 16세기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여왕 메리 스튜어트 역을 연기하는 이자벨 위페르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한국에서 공연을 선보일 수 있어 기쁘다. 빛과 음악, 움직임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이 작품에 한국 관객들도 분명 빠져들 것”이라고 말했다. 성남문화재단 제공·ⓒLUCIE JANS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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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오르면 마치 산의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기분이에요. 평지를 닮은 영화에 비해 연극은 더 큰 노력을 요구하죠. 그러나 그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정말 눈부셔요.”
칸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에서 각각 두 번의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랑스 ‘국민 배우’ 이자벨 위페르는 이렇게 말했다. 다음 달 1, 2일 경기 성남아트센터에서 아시아 초연되는 연극 ‘메리 스튜어트’에서 그는 16세기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여왕 메리 스튜어트 역을 맡으며 첫 내한 공연을 연다. 장뤼크 고다르, 폴 버호벤 등 영화계 거장들이 사랑한 영화배우로 잘 알려졌지만 이보 반 호브, 티아구 호드리게스 등 세계적인 연극 연출가들이 택한 무대 위 거목이기도 하다. 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연극 ‘베레니스’ 공연을 앞두고 있던 위페르를 전화로 만났다.
“한국은 내게 특별한 나라예요.”
내한 공연에 대한 소감을 묻자 그가 수화기 너머로 설렘을 드러냈다. 1998년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로 처음 한국을 찾은 위페르가 한국 땅을 밟는 건 이번이 여섯 번째. 홍상수 감독의 영화 ‘다른나라에서’ ‘클레어의 카메라’ ‘여행자의 필요’ 등 3편에 출연하면서 한국 관객에게도 눈도장을 찍었다. “부산에 두 번, 서울에 네다섯 번 갔어요. 마지막 방문 때는 서울의 산기슭에 있는 호텔에 묵으면서 등산을 했죠. 정상에 오르자 펼쳐진 도시 전경은 마법처럼 아름다웠어요. 마치 연극이라는 산을 올랐을 때처럼요.”
그가 이번에 올라야 할 연극은 1587년, 메리 여왕이 사형을 당하기 직전에 남긴 마지막 편지에서 착안했다. 왕관을 쓰고 태어난 어린 시절부터 사별과 암살로 끝난 세 번의 결혼, 왕위를 빼앗긴 뒤 18년간 이어진 감금 생활까지 망라하며 생존보다는 역사에 남기를 원했던 여왕의 삶을 그린 1인극. 특히 작품은 정치적 소용돌이 너머 메리가 품었던 사랑과 욕망의 감정까지 들여다본다. 스스로 “남자 뒤에 서 있는 여자였던 적이 없다”고 밝힌 위페르는 “메리 역시 남자로부터 가치를 부여받기보다 남자에게 사랑을, 가치를 부여하는 여자였다. 그 다층적 면모를 관객에게 잘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위페르는 사실적이고 절제된 연기에 특출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리 여왕의 냉혹하고 굴곡진 인생은 그의 연기로 어떻게 재탄생할까. 그는 “일반적인 연극보다는 퍼포먼스에 가까운 형태다. 주변 인물은 상상에 머무른 채 처음부터 끝까지 독백으로 상황과 감정을 전달해야 하기에 까다롭다”며 “애정과 비애, 분노 등을 넘나드는 감정은 목소리 높낮이, 끝없는 움직임 등 감각적으로 표현된다”고 했다.
90분 길이 공연은 궁중 무용을 닮은 춤사위와 느리고 정교한 몸짓으로 가득하다. 2019년 프랑스 파리시립극장에서의 초연을 앞두고 위페르가 “이렇게나 움직임이 많을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 ‘이미지극의 대가’로 불리는 미국 출신 연극 연출가 로버트 윌슨이 안무하고 연출했다. 이를 아우르는 음악은 이탈리아의 영화 음악 거장 루도비코 에이나우디가 작곡했다.
“윌슨과 홍상수는 비슷하고도 다른 두 천재예요. 윌슨은 완벽히 정제된 지시를 줘요. 그 결과물은 작위적인 분위기지만 이를 연기할 땐 완전한 자유를 느끼죠. 반면 홍상수의 영화는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과 달리 실은 매우 치밀하게 준비돼 있어요. 즉흥 연기는 없어요. 물론 대본이 너무도 완벽하게 쓰여서 제가 한 글자도 고치고 싶지 않지만요.”
이틀간의 짧은 공연이 끝난 뒤 그를 다시 한국 영화나 공연에서 볼 수 있을지 물었다. “아직 홍 감독과의 촬영이 예정된 작품은 없어요. 하지만 우리의 우연한 만남이 수년간 반복됐으니, 머잖아 또 손잡지 않을까요(웃음). 일어날 일은 일어나듯,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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