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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김정기의 소통카페] 디지털 세계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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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


컴퓨터, 핸드폰,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이 정보에 ‘영원성’을 부여하고 있다. 검색을 통해 정보를 찾아내고(‘즉각 접근성’), ‘복제의 복제’ ‘복제의 복제의 복제의…’를 통해(‘완전 복제성’) 정보의 ‘영생 시대’를 열고 있다. 복제를 반복하면 잡음이 끼어들어 궁극적으로 0에 수렴하는 아날로그의 ‘유한한 정보 세계’를 벗어난 ‘무한한 정보 세계’다. 호모 사피엔스의 문명이 경험하지 못한 ‘불사의 세계’이다.



무한 복제·가공의 디지털 기술

‘쾌락과 감시’로 인간 통제 가능

역기능 방지 제도 및 교육 시급

중앙일보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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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질도 경이롭게 변신했다. 각기 독립된 양식으로 존재하던 정보(텍스트, 사운드, 문자, 영상, 사진, 동영상)가 복합성(multimodality)이라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결합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정교한 복합정보의 탄생으로 인지적·감정적·행동적 차원을 망라하여 인간의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자극과 소구는 막강해졌다. 디지털 정보는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어디든 누구에든 퍼져 나가고, 다양한 웨어러블 장치를 통해 인간의 신체 일부가 되어 비동시적인 시간과 공간의 세계를 동시적인 세계로 존재하게 한다.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의 역사문화학자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디지털 세계를 관장하는 인공지능의 내재화로 인간은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고 예견할 정도이다.

그러나 디지털 세계는 디스토피아의 어두운 그늘도 동반하고 있다. 아날로그 정보와는 다르게 어떤 형태의 정보든 가공 변환할 수 있는 디지털의 ‘정보 조작’ 기술 때문이다. 근래 무서운 속도로 증가 중인 불법 음란 콘텐트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 내는 기술로 ‘자신의 얼굴’을 한 음란물이 국내외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소름 끼치는 성범죄 콘텐트가 거의 자동으로 너무나 쉽게 대량 생산되어 활보하면서 희생자를 양산한다. 디지털 기술 개발은 국가와 세상의 환호 속에서 질주 중이고, 안타깝게도 가짜 정보의 삭제와 방지책은 걸음마 단계이다. 더구나 이런 콘텐트의 50% 이상이 우리나라와 관련이 있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장소도 가리지 않는다. 교육부가 발표한 올해 1월부터 9월 27일까지 ‘학교 딥페이크 허위 영상물 피해 현황 4차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해는 504건 833명에 달한다. 심지어 초등학교에서도 16건이 발생했다. 재판부가 “차마 입에 못 담을 역겨운 내용”이라며 징역 5년을 선고한 딥페이크 범죄는 서울대에서 발생했다.

디지털 안면인식 기술도 우려스럽다. 예를 들어 중국은 6억2600만 대의 안면인식 CCTV 카메라, 일반 감시 카메라 5억6700만 대 이상의 스크린 시스템을 갖춰 14억 인구 중에서 특정인 식별에 드는 시간은 대략 3초, 인식 정확도는 99%를 웃돌아 쌍둥이도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안면인식 기술은 보안, 자동결제, 법 위반과 교통법규 단속, 범죄자와 실종자 탐색에 사용된다고 하지만 개인권 침해, 인권탄압, 반정부 인사를 색출·처벌·통제에 악용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디지털 스크린이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탄압하는 전체주의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딥페이크와 안면인식 기술과 같은 디지털 기술은 일찍이 스크린 영상매체의 부정적 영향력을 지적한 사회교육문화비평 커뮤니케이션 학자 닐 포스트먼(1931~2003)의 통찰을 떠올리게 한다. 포스트먼은 40여 년 전에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담고 있는 쾌락을 주는 정보환경의 조작과 조지 오웰의 『1984』가 담고 있는 스크린 감시를 통한 인간 통제와 자유의지의 말살과 같은 파국이 ‘미디어(정보) 포화’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것에 대해 우려했다(『죽도록 즐기기』). 디지털 정보 포화의 세계에서 딥페이크가 즐거움의 쾌락을 통해, 안면인식 기술이 감시의 고통을 통해 인간을 통제할 가능성은 항시 존재하는 것이다.

현대인의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디지털화가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다. 개인, 가족, 인간관계, 가치관, 사회적 행동 양식에 미치는 영향과 변화에 대해 기술 개발에 쏟는 투자 못지않은 관심이 필요하다. 디지털 세계가 “정보와 소통에 도취케 하여 사회를 혼미한 상태로 만들고, 정보의 쓰나미가 민주주의 과정에 혼란과 장애를 유발하고 디지털크라시로 변질”(『정보의 지배』, 한병철)시키는 것을 경계하고, “세계를 더 적대적, 덜 공감적, 덜 친절하게 느껴지게 만들고 우리의 집단적 웰빙에 심각한 타격”(『고립의 시대』, 노리나 허츠)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범죄와 통제에 악용되는 역기능에 대처하는 법과 제도를 마련하고 합리적인 이해와 활용을 위한 교육시스템을 서둘러 갖춰야 한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 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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