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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아주 뜨겁지는 않지만 식지 않는 열정도 있다[2030세상/배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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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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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한번 배우면 평생 먹고살 수 있다고들 하지만 실제로는 한번 배우면 끝이 아니고 배운 기술을 끝없이 발전시켜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도배 역시 기술자가 된 후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연마해야 한다. 일반 가정집과 상가, 신축과 구축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도배 기술이 필요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도배 스타일도 유행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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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율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처음 도배를 시작해 5년 동안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기술을 배워가며 일했고, 현장을 나와 일반 가정집 도배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은 새로운 환경에 맞는 새로운 기술을 배워나가고 있다. 새 기술을 얼른 배워 성장하고 싶은 욕심이 크지만 그보다는 우선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끝마치는 것, 받는 돈만큼의 몫을 해내는 것,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술 습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에 비해 배움이 더딜 때가 많다.

얼마 전에는 기술을 알려주던 선배가 배움이 더딘 내게 도배에 대한 열정이 부족한 것 아니냐고 물어왔다. 그날 이후 나는 도배에 대한 나의 열정에 대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는 정말 도배에 대한 열정이 없을까? 그리고 열정이 없다면 잘못된 일일까? 열정이란 어떤 일에 대해 열렬한 애정을 가졌다는 말인데 ‘태우다, 타다’라는 뜻의 한자 열(熱)이 들어간다. 어떠한 일에 뜨겁게 불타는 마음을 가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선배의 말처럼 나는 누군가에 비해 아주 뜨겁지는 않은, 조금은 미지근한 마음으로 기술을 배우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 습득보다는 날마다 현장에서 내가 맡은 일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더 우선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이 차갑게 식어 냉랭한 것은 아니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생계유지를 위해 도배를 배우기 시작해 여러 현장에서 쉬지 않고 성실히 일하다 보니 기술자가 되었고 도배사라는 직업에 대한 애정도 생겨났다. 조금은 더디더라도 멈추거나 뒤처지지 않고 성장하기 위해 꾸준히 고민하고 노력해 왔다. 아주 뜨겁게 불타오르지는 않았어도 도배를 향한 내 마음이 식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나의 불꽃 안에도 다양한 온도가 존재한다. 파란색을 띠는 불빛이 가장 높은 온도이며 붉은색을 띠는 불빛은 그에 비해 낮은 온도라고 배웠다. 하지만 비교적 온도가 낮은 빨간색의 불도 손을 대면 뜨거운, 여전히 불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내 직업에 대한 애정과 기술적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주 뜨겁게 타오르지는 않았을지라도 도배사 생활 6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잔잔하게 타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또한 열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살아오면서 어떤 대상에 대해 아주 뜨거운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스스로 열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어떤 일이든 시작하면 끝까지 꾸준하고 성실하게 임해 왔다. 그러니 겉으로는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손을 대면 뜨거운, 그런 열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잔잔한 열정도 있다.

배율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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