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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노벨상 작가 한강 ‘만성 적자’ 독립서점 지키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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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그곳에…세상을 보는 ‘다른’ 시선이

경향신문

책방 앞 기념촬영 202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가 대표로 있는 서울 종로구의 독립서점 ‘책방오늘’ 앞에서 13일 시민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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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좋은 책 발견할 수 있게
“자본 논리와 상반된 경영 연장”

해외작가 방한·문학 행사 등
독립서점서 진행…힘 실어줘

도서정가제 폐지에 ‘반대’
“동네서점서 책 다양성 지켜”

일요일인 13일 오후 3시. 서울 서촌의 작은 서점 ‘책방오늘’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폭 5m 정도의 좁은 도로 앞에 몰려든 사람들은 저마다 ‘인증샷’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여기가 노벨 문학상 받은 작가 서점이래!”

‘책방오늘’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사진)가 대표로 있는 독립서점이다. 한 작가의 수상 소식이 전해진 뒤 서점 앞에는 각지에서 보내온 축하 화분과 꽃다발, 수상을 축하한다는 메모가 쌓여 있었다. 서점 앞에서 인증샷을 찍던 채수정씨는 “<채식주의자>를 감명 깊게 읽었는데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소름이 끼쳤다”면서 “서촌 나들이를 온 김에 둘러보러 왔다”고 말했다. “한국 문학에 관심이 많다”는 일본인 유학생 오카자키 게이코도 “수상 소식을 듣고 와봤다”며 휴대폰으로 서점 사진을 찍었다. 서점 앞 카페 어라운드시소 직원은 “작가님이 책방에 나오는 날이면 가끔 왔는데 주로 따뜻한 라떼를 드셨다”고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서점은 수상 소식이 전해진 이튿날인 지난 11일 낮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당분간 쉬어간다’는 안내도 내걸었다.

‘책방오늘’은 2018년 9월 서울 서초구 인근에서 문을 열었고, 2년 전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출판계에 따르면, 한 작가는 직접 진열할 책을 고르고,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책방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한 작가는 2016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만약 글쓰기를 포기해야 하면 생계를 위해 어떤 일을 하겠냐는 질문에 “작은 독립서점을 열고 싶다”고 답하기도 했다.

한 작가가 오랜 시간 독립서점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집필에 몰두하는 와중에도 꾸준히 책방을 운영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수익을 위해서는 아니다. 대부분의 독립서점이 그렇듯 ‘책방오늘’도 수익을 못 내 적자를 면치 못하는 실정이다.

‘웹진 비유’ 2022년 7월호에는 ‘책방오늘’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인터뷰이 이름은 나와 있지 않지만, 내용상 한 작가가 답변했을 것으로 보인다.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그 질문에 대체로 따라오는 ‘어떻게 이익을 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간명한 답은 이익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만성적으로 큰 폭의 적자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이 비이성적인 활동을 계속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고 답했다.

출판계에서는 한 작가가 ‘큰 폭의 적자를 내는 비이성적인 활동’을 지속하는 이유에 대해 한 사회에서 독립서점이 갖는 가치와 역할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담겨 있다고 본다. 한 작가가 생각하는 독립서점의 가치와 역할은 무엇일까. ‘웹진 비유’ 인터뷰에서 그 속내를 찾을 수 있다.

“어떤 대가도 없이 우리에게 좋다고 생각되는 책들을 잘 보이도록 매대와 서가에 진열해두면,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얼른 선택하기 어려웠던 그 책들을 손님이 만나게 된다. 그 반가운 순간들이 서점을 운영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이다.”

독립서점은 판매량이라는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독자의 시선 밖에 머물러 있는 책이 주목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대형 서점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던 책들을 재발견할 수 있고, 독자는 그 책들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선을 재구성할 수 있다. 한 출판 관계자는 “한 작가는 책방을 운영하면서 독자들이 좋은 책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실제로 한 작가는 독립서점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조용히, 꾸준히 해왔다. 그는 자신이 관여된 해외 작가의 방한이나 행사 등을 독립서점에서 진행한 적이 많다. 서울 용산구 해방촌의 독립서점 ‘고요서사’는 1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2015년 한 작가가 조용히 손님으로 찾아왔던 기억을 전하며 “한강 작가님은 평소에도 작은 서점의 소중함과 귀중함에 대해 많이 말씀해 오셨고 그만큼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주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오래전에 저희 서점에 대해 영국 BBC 라디오에서 언급해주시기도 했을 뿐 아니라, 여러 다양한 행사를 작은 서점들과 함께하시고 소비해주셨다. 작가님이 지향하는 가치에 동참하고 싶다면 주변의 동네 작은 서점을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밝혔다.

파주에서 ‘쩜오책방’을 운영하는 이정은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사무처장은 “한 작가님은 드러나게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 걸로 아는데, 독립서점에 관해서는 적극적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의 도서정가제 폐지 추진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에도 나섰다. 이 처장은 “영세한 규모로 운영하는 동네서점이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건 도서정가제가 있어서다. 당시 작가님이 아마도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필 중이었을 때인데, 기자회견을 요청드렸더니 나서주셨다”며 “작가 분들이 나서주기가 쉽지 않다. 여러 단체에서 반대를 했지만, 특히 한 작가님이 반대 기자회견을 했던 게 도서정가제 폐지를 막는 데 결정적이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작가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버스정류장 7~8 정거장 안에 서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동네서점이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는다”며 “동네서점으로 책의 다양성이 지켜진다. 독자들이 책방의 문화행사를 찾아가게 되면 생활의 패턴이 달라지고, 읽는 책도 늘어난다. 결국 삶의 패턴도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노벨위원회는 한 작가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그의 독립서점에 대한 애정 역시 야만적 경쟁, 타인에 무감한 사회에서 책과 문학을 통해 인간의 연약함을 보듬을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한 출판 관계자는 “서점 운영은 그의 문학의 연장선상에서 작고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실천의 현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웹진 비유’와의 인터뷰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우리는 약간의 공간을 현실로부터 임대해 신기루 같은 이곳을 만들었고, 자본의 논리와 상반되는 경영을 한 해씩 연장해가고 있다. 책 판매와 행사 기획을 모두 어렵게 만든 팬데믹 상황이 닥쳐왔을 때는 3개월 동안 휴업도 했는데, 그때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이 있다. 이 서점에 관한 어떤 일도 함부로 실패라고 부르지 않겠다고. 우리가 현실의 시공간에 기입해왔고, 지금도 기입해가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의 의미를 언젠가 정확히 알게 될 순간까지.”

박송이·최민지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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